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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騎士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에 편성되어 있던 특수 기병대. 각 150인씩으로 조직되어 있었으며, 50인씩 3개번으로 나누어 교대로 근무하였다. 1750년(영조 26) 지방에서 징집하는 향기사제를 폐지하고, 경기사 중심의 직업군으로 개편한 것이다. 각 번에는 지휘관인 정
기사장 / 騎士將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금위영과 어영청 소속의 정3품의 관직. 이들 양영은 보병과 기병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사별장(騎士別將) 밑에 3인의 기사장을 두어 각각 기사 150인을 지휘, 감독하도록 하였다.
기총 / 旗摠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군사조직의 하부단위인 기의 장. 잡직으로 정8품이다. 16세기 말 임진왜란을 계기로 조선 후기의 군사조직은 훈련도감을 비롯한 모든 군영의 조직편제를 대개 영(營)―부(部)―사(司)―초(哨)―기―대(隊)―오(伍)로 편제하였다. 따라서, 1오는 대개 5인, 1
기패관 / 旗牌官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여러 군영에 두었던 군관직. ≪대전회통≫에 의하면 훈련도감에 20인, 금위영에 10인, 어영청에 11인, 총융청에 2인, 수어청에 19인, 그리고 강화도의 진무영(鎭武營)에 71인을 두었으나 시기에 따라 증감이 있었다.
김좌진 / 金佐鎭 [정치·법제/국방]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89∼1930). 부유한 명문대가 출신으로 15세 때 집안 노비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백운평·천수평·마록구 등지에서 3회의 격전을 전개 하였
김창룡 / 金昌龍 [정치·법제/국방]
항일기의 군인(1920∼1956). 1941년부터 일본 헌병대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관동군 헌병대에서 대공사찰을 담당했다. 광복 후엔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소령·육군특무대장·준장·소장으로 진급했고, 특무대장 재직 때에는 공산당 색출과 군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했으나
김해병서 / 金海兵書 [정치·법제/국방]
삼국시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군서. 병서. 김해(金海)는 연개소문의 자(字)라고 한다. 이 책은 신라의 아찬(阿飡) 설수진(薛秀眞)이 지었다는 『육진병법(六陣兵法)』과 더불어 오늘날 전하지 않는 고대 병서의 하나이다. 『고려사』에 1040년(정종
난후별대 / 欄後別隊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설치되었던 특수기병부대. 왕의 행차시에 어가의 앞뒤에서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779년(정조 3)에 훈련도감의 우전초마병을 차출하여 난후별대라 부르고, 왕이 성밖을 나갈 때 절반은 초관이 인솔하여 어가의 앞에서 호위하고, 절반은 별장이 인솔하
난후사 / 欄後士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 평안도에 설치되었던 특수부대. 1747년(영조 23) 평안병사 이일제(李日躋)의 건의로 병영이 있었던 안주(安州)와 인근 100리 이내의 장정 중에서 건장한 자들을 뽑아 편성하였다. 그 규모는 2,000여 인으로 도내의 무술시험에서 우수한 자는 변방의 장수
남병영 / 南兵營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함경도 북청에 설치되었던 병마절도사영. 1466년(세조 12)에 처음 병마절도부사(兵馬節度副使)를 두었다가, 이듬해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겪은 뒤 병영으로 승격되었다. 남도 병영 혹은 남병영으로 통칭되었고 주장(主將)을 남병사라 불렀는데, 수군절도사를 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