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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대 > 삼국시대
무시이 / 茂尸伊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의 무시이현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멸하였을 때 사반주(沙泮州) 영현의 모지현(牟支縣)으로 바꾸었다. 통일신라 때 경덕왕이 무주(武州) 관할의 무령군(武靈郡)으로 고치고 장사(長沙)ㆍ무송(茂松)ㆍ고창(高敞)의 세 현을 속현
무애가 / 無碍歌 [문학/고전시가]
신라시대 원효(元曉)가 지었다고 하는 불교가요. 제작연대는 미상이고, 가사도 현전하지 않는다. 다만, 노래의 유래가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조(元曉不羈條)와 『파한집』 권하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 이 노래는 「무애무(無㝵舞)」로 바뀌어져서 궁중의 정재(呈才) 춤의
무장 / 茂長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옛 지명. 무장은 무송(茂松)과 장사(長沙)가 합쳐진 지명이다. 무송현(지금의 성송면)은 백제 때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무송으로 고쳤다. 장사현(지금의 상하면)은 백제 때 상로현(上老縣)이었는데, 663년 당나라의 지
문군곡 / 問群曲 [문학/고전시가]
신라 경문왕 때 화랑 요원랑(邀元郎)·예흔랑(譽昕郎)·숙종랑(叔宗郎) 등이 지은 노래. 금란굴(金蘭窟)에서 놀면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을 노래한 3편의 노래 중의 하나로 나머지 두편은 「대도곡(大道曲)」·「현금포곡(玄琴抱曲)」이다.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다만 노
문등 / 文登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회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문현현(文峴縣, 일명 斤尸波舍)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문등현으로 고쳐서 대양군(大陽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춘주(春州)로 이관하였다가 뒤에 다시 회양으로 환원하였고,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문산 / 文山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안변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가지달현(加支達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청산(靑山)으로 고쳐 삭정군(朔庭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기 문산현(汶山縣)으로 바꾸고 1018년(현종 9) 그대로 소속시켰다가 뒤에 문산(文山)으로 한자이름을 바꾸었다.
문의 / 文義 [지리/인문지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구 청원군 문의면)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쳤다. 고려 때청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으며, 1259년(고종 46) 위사공신(衛社功臣)
문화 / 文化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신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궐구현(闕口縣)이었는데, 고려 초유주(儒州)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풍주(豊州, 또는 豊川)에 속하였으나, 1259년(고종 46) 문화현으로 바꾸고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 현령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
문화량 / 蚊火良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고성(固城) 지역의 옛 지명.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위치로는 고성과 사천(泗川) 사이이며, 문헌상에는 신라 때 고성군의 영현이 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뒤의 변천은 알 수 없다. 문화량은 옛 발음으로 ‘문화라’라고 읽으며,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지형
문희매몽설화 [문학/구비문학]
신라시대 김유신(金庾信)의 누이 김문희(金文姬)가 언니인 김보희(金寶姬)로부터 꿈을 사서 김춘추(金春秋), 즉 태종무열왕의 비(妃)가 된 설화.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 전한다. 처음 김보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장안에 가득 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