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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진 / 金復鎭 [예술·체육/조각]
1901-1940. 조각가. 호는 정관(井觀). 충청북도 청원 출신. 소설가 기진(基鎭)의 형이다. 우리나라 근대조각의 개척자이다. 1920년에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조각을 전공하고 1925년에 졸업했다. 그뒤 서울의 모교인 배재고등보통학교 미술교사, 경성여자상업학
김봉문 / 金奉文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판소리 명창(1876-1930). 명창 박기홍(朴基洪)에게 판소리를 배워 민족항일기초에 명창으로 이름을 떨쳤다. 박기홍의 소리제를 이어 동편제 소리의 진수를 발휘했으며, 〈흥보가〉를 잘하였고 특히 ‘박타는 대목’에서 ‘박물가(博物歌)’를 잘 불렀다.
김봉학 / 金鳳鶴 [예술·체육/국악]
1883-1943. 판소리의 명창. 원각사(圓覺社) 주석으로 있던 판소리명창 김창환(金昌煥)의 아들로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판소리를 10여년간 배웠고, 아버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풍채와 더불어 좋은 목과 재질을 타고나서 대명창이 되었다.
김삼현 / 金三賢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시조 작가 주의식(朱義植)의 사위이다.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벼슬을 지냈다. 시조 6수가 『청구영언』·『해동가요』·『가곡원류』 등에 전한다. 『청구영언』 홍씨본(洪氏本)에는 ‘한산인(閑散人)’으로, 『대동풍아(大東風雅)』에는 ‘숙종조명
김상진 / 金尙鎭 [예술·체육/영화]
1905-미상. 영화감독·영화미술가. 서울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에 재질을 보였으며 영화와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영화제작의 기운이 일어나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구영(李龜永)이 감독한 〈쌍옥루 雙玉淚〉(1925)의 자막을 담당
김소동 / 金蘇東 [예술·체육/영화]
1911-1988년. 일제 강점기 영화인·작가·평론가. 본관은 함창(咸昌)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상주(尙州)이다.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포영화이자 유성영화(有聲映畵) 〈목단등기(牧丹燈記)〉를 감독하였다. 1956년 영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감독하였다.
김소랑 / 金小浪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신극 초창기 신파배우. 본명은 현(顯).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
김소진 / 金少珍 [예술·체육/연극]
생몰년 미상. 한국신극사상 최초의 여배우. 1917년 2월 신파와 창극의 혼합을 제창하고 나선 극단 개량단에 최초의 여배우로서 등장하였다. 원래 기생출신으로 창을 잘했기 때문에 여배우로 뽑혔고, 창극계통에서도 촉망받았다. 우리 신극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여형배우(女形俳優
김수악 / 金壽岳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읍 출생. 아버지 김종옥은 국악애호가에 한량이었고, 작은 아버지 김종기는 진주권번의 가야금 선생이었다. 9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김옥민에게 춤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
김숙자 / 金淑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김숙자의 조부 김석창(金碩昌)은 경제(京制) 명창이었고, 부친 김덕순(金德順)은 판소리, 경기무악, 민속악의 재인으로 화성 재인청과 안성 신청에 속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