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황종화 / 黃鍾和 [역사/근대사]
1878-1950.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진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남도 각지를 순회하면서 만세시위운동에 가담하여 독립선언문과 격문 등을 배포하여 각 지방에서의 만세운동을 선동하였다. 같은해 4월 이운형(李運衡)·이영봉(李永鳳)·김규열(金圭烈) 및 임
황준량 / 黃俊良 [종교·철학/유학]
1517(중종 12)∼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황영손의 증손, 할아버지는 황효동, 아버지는 황치, 어머니는 황한필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권지성균관학유로 임명되고, 이어 성주훈도로 차출되었다. 신녕
황진연 / 黃珍淵 [역사/근대사]
1899-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明川)이다. 1918년 1월 거주지를 만주(滿洲)로 옮긴 후 한의원을 운영하며 사회주의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당원이 되었다. 1930년 ‘간도 5·30봉기’ 때 길림성(吉林省) 연
황진이 / 黃眞伊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朴淵)」·「영반월(詠半月)」·「등만월대회고(登滿月
황찬서 / 黃贊西 [역사/근대사]
1873-191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황찬서(黃贊瑞)이다.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 강한 항일의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의병 활동을 선전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이후 남원(南原)에서 일본 상품의 불매운동, 세금불납, 토지 불매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황창섭 / 黃昌燮 [역사/근대사]
1896-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예천(醴泉)이다. 잡화상·자전거포·철공업 등에 종사하였다. 1925년 예천청년회 검사위원·예천신흥청년회 교양부담당 상무집행위원·사회주의 사상단체 오오회(五五會) 집행위원, 1927년 예천사우회
황창오 / 黃昌五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생. 일찍이 조국광복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각오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적극 참가하여 고향인 화성군 태안면 삼정리에서 대중을 규합, 조직하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계속 독립사상을 고취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황최 / 黃最 [종교·철학/유학]
1680년(숙종 6)∼1750. 황우성의 아들이다. 1725년(영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실패하였다. 만년에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많았다. 저서로는 《독성재집》이 있다.
황최언 / 黃最彦 [종교·철학/유학]
1711년(숙종 37)∼미상. 조선 후기 문신. 황근중 5대손, 증조는 황석, 조부는 황응두이다. 부친 황수태와 모친 이만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우정구이다. 1735년(영조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등용이 늦었다. 1769년(영조 45)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