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홍호 / 洪鎬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6(인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귀달의 후손, 언국의 증손, 할아버지는 경삼, 아버지는 덕록, 어머니는 유승선의 딸이다. 정경세의 문인이다.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예조참의, 동부승지, 우부승
홍효선 / 洪孝善 [역사/근대사]
1879-1932.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洪)·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앞에
홍흥 / 洪興 [종교·철학/유학]
1424(세종 6)∼1501(연산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용 증손, 할아버지는 덕보, 아버지는 심, 어머니는 윤규의 딸이다. 좌의정 응의 아우이다. 1443년(세종 25) 사마시에 합격, 음보로 세마에 등용되었다. 감찰, 평택현감, 지평, 형조정랑, 호조정랑, 장
화평옹주 / 和平翁主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748년(영조 24). 어머니는 영빈이씨이다. 사도세자와는 친동기간이다. 1727년(영조 3)에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난다. 화평옹주는 예조참판 박사정의 아들인 금성위 박명원에게 하가하였다. 화평옹주는 심성이 곱고 너그러워 사도세자를 위로했다고
황갑주 / 黃甲周 [역사/근대사]
1894-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해수(海水)이고, 호는 배천(配泉)이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승지(承旨) 황적(黃迪)의 12세손이다. 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황치방(黃致坊)이다. 1919년 3·1운동(三一運動)이 일어난 후, 3월 10일 전라북도
황경원 / 黃景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예학자(1709∼1787). 1740년 증광문과 병과급제 후 이조참판 겸 대제학·예조판서·공조판서·중추부판사 등을 지냈다. 서예에 능하고, 예학에 정통, 고문에도 밝았다. 저서로《남명서》·《명조배신전》등이 있다.
황계희 / 黃啓熙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785년(정조 9). 조선 후기 학자. 부친 황도중과 모친 이만헌의 딸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황서희이다. 이상정의 문인이다. 17세에 부친상을 당하고 난 후부터는 더욱 학문에 정진하여 능통하지 않은 학문이 없었다. 특히《대학
황곡 / 黃斛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 1765년(영조 41) 식년사마시 생원 3등으로 합격했다. 관학에 있을 때《소학》교육의 진흥책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학의 깨달음이 깊어〈태극이기〉를 짓고, 혼천의를 만들었다.
황구하 / 黃龜河 [종교·철학/유학]
1672(현종 13)∼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형 증손, 할아버지는 신구, 아버지는 건, 어머니는 이문행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좌부빈객, 호조판서, 동지경연사, 한성부판윤,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황국주 / 黃國柱 [종교·철학/신종교]
항일기의 종교운동가(?-?). 도덕적 완전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신비주의적 영체교환의 교리를 가르쳤다. 1933년 신앙과 사상을 포교하기 위해 《영계》라는 잡지를 간행하였으나, 1933년 평안도의 안주 노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