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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홍장 / 紅粧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강원도안렴사 박신과 관련된 기녀. 시조작가로서 그녀가 지은 시조 1수가 전한다. 박신(朴信)이 강원도안렴사로 갔을 때 그녀를 사랑하여 아주 깊이 정이 들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갈 때 강릉부윤으로 있던 조운흘(趙云仡)이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홍재 / 洪梓 [종교·철학/유학]
1707년(숙종 33)∼1781년(정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구조의 아들이다. 1753년(영조 29) 시직으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754년 정언·호남어사·부교리·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756년 헌납, 1757년 수찬으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 보덕을 거
홍재문 / 洪在文 [역사/근대사]
1897-1958.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월 11일 부산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들의 의거는 경상남도 지방에서도 항쟁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또 이 고장의 자주독립의 항일의식을 더 한층 높여주었다. 당시 부산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중
홍재의 / 洪在義 [역사/근대사]
1886-196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홍기숙(洪奇淑)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安城)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
홍재정 / 洪在政 [종교·철학/유학]
1881-1957년. 일제강점기의 유학자. 자는 성칠(聖七)이고, 호는 석암(石巖)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증조부는 홍익대(洪益大)이고, 조부는 홍종필(洪宗弼)이며, 아버지는 홍인변(洪仁變)이다. 항산(恒山) 홍재목(洪在穆)과 추담(秋潭) 이순성(李舜性)의 문
홍재하 / 洪載夏 [종교·철학/유학]
1882-1949. 일제강점기 유학자. 자는 경우(敬禹)이고 호는 우석(愚石)·석헌(石軒)이다.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경상북도 부림현(缶林縣), 곧 지금의 군위군(軍威郡) 부계면(缶溪面)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홍우영(洪宇永)이고, 조부는 홍기석(洪祺錫)이며, 아
홍재학 / 洪在鶴 [종교·철학/유학]
1848년(헌종 14)∼1881년(고종 18).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 본관은 남양. 1880년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고종에게 올려 이에 대한 찬반론이 대두하게 되었다. 당시 조정은 개화정책을 강화하기 위하여 《조선책략》의 복사본을 전국유생에게 배포하였다. 이러한
홍정희 / 洪禎禧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발레연구회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 전남 목포 출신. 아버지 홍주표와 어머니 김이순의 3남3녀 중 셋째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여 12세가 되면서 목포여자중학교 무용교사 정춘혜(일본 다까라스까예술학교)에게 본
홍종구 / 洪宗九 [종교·철학/유학]
1781~1841. 홍귀달의 후손, 혜적의 아들. 홍석주의 문하에서 배웠다. 교유인물로는 홍종섭과 류정재 같은 인물이 가장 친밀했다. 평생의 업적으로는 산일되어 있던 문광공의 유문을 수집하여 속간한 일과 임호서원이 퇴락해 지자 수리하여 옛 제도를 회복하게 한 일,
홍종락 / 洪鍾洛 [역사/근대사]
1887-1939년.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군위 출신.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인 길림성군정서 부속 흥업단(興業團)의 이만준(李萬俊)이 환인현(桓仁縣) 한교공회(韓僑公會)의 김인제(金仁濟)·최성기(崔聖基)·황문익(黃文益)을 데리고 1920년 말경 국내로 잠입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