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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푸트 / Lucius H. Foote [정치·법제/외교]
1826-1913.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 1883년 5월 - 1885년 1월 재임. 1883년 2월 27일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로 푸트를 임명하였다. 5월 13일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5월 19일 서울에서 외부대신 민영목과 조약 비준서를 교환하였다. 1883년
하겸진 / 河謙鎭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1946년. 근세의 유학자. 아버지는 재익, 어머니는 김해허씨이다. 17세에 당대의 명유 허유를 만났다. 27세 때 스스로 곽종석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고, 29세 때에는 이승희·장석영·송준필 등과 교유, 선현들의 유허지를 순례하고 많은 선비들과
하규일 / 河圭一 [예술·체육/국악]
1867-1937년. 근세 가곡의 거장. 자는 성소(聖韶), 호는 금하(琴下). 본관은 진주(晋州). 서울 출신으로 가곡의 명창 하순일(河順一)과는 사촌간이다. 작은아버지 중곤(仲鯤)에게 가곡을 배운 다음, 중곤의 스승인 최수보(崔守甫)에게 사사하여 대성하였다. 19
하기와라 슈이치 / 萩原守一 [정치·법제/외교]
1868-1911. 주한 일본공사관 서기관. 일본 외무성 통상국장. 1895년 일본국 인천 영사대리로 조선에 왔다. 1896년 10월 17일까지 재임하였다. 1901년 6월 19일 일본공사관 이등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한일협약 체결 등에서 활약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하나부사 요시모토 / 花房義質 [정치·법제/외교]
1842-1917. 일본 외교관. 임오군란 당시 조선 주재 일본공사. 일본적십자 사장. 1872년 외무대승으로 승진. 이때 청국과 조선에 파견되었다. 1873년 러시아공사관 서기관 임명, 에노모토 다케아키 공사를 도와서 사할린, 쿠릴열도 교환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당시
하난사 / 河蘭史 [교육/교육]
1868-1919년. 교육자·여성운동가. 평양 출신. 본명은 알 수 없으며, 영어 이름은 낸시(Nancy)였다. 남편인 하상기(河相驥)의 성을 따서 하란사라 하였다. 이화학당에서 공부하다가 1896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레이안대학(Ohio Wesleyan大學)으로 유학을
하라 다카시 / 原敬 [정치·법제/외교]
1856-1921. 일본 외무관료 수상. 1876년 사법성법학교에 퇴학당하고 <우편보지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1881년 <대동일보>의 주필이 되었다. 이노우에 가오루를 알게되어 1882년 대동일보사 퇴사 후 외무성 어용괘로 채용되었다. 이어서 천진 영사, 주불공사관
하보경 / 河寶鏡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경남 밀양 출신. 밀양백중놀이의 보본계(報本契)라는 친목단체인 농악단원이었던 부모 하성옥(河聖玉)·이삼선의 사이에서 태어나, 걸립농악단의 모갑(某甲)이면서 큰북을 치기 시작하여 가락과 춤동
하세가와 요시미치 / 長谷川好道 [정치·법제/외교]
1850-1924. 한국 주둔 일본군 사령관. 제2대 조선 총독. 1871년 육군 대위로 임관하였다. 1886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보병 제12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1896년 중장으로 승진하였고 제2사단장이 되었다. 1904년 9월 5
하수일 / 河受一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공진의 후손, 형의 증손, 할아버지는 희서, 아버지는 면, 어머니는 조정견의 딸이다. 1591년(선조 2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7년 형조좌랑·형조정랑을 거쳐 현감까지 지냈다. 문집으로 『송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