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최충 / 崔沖 [종교·철학/유학]
984-1068. 고려시대의 유학자. 1005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문종 초에 문하시중으로 있으면서 고려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055년 9재학당이라는 최초의 사학을 창립하여 구경과 삼사를 가르쳤다. 고려 유학을 흥성시켰으며 해동공자라고 불리웠다
최충성 / 崔忠成 [종교·철학/유학]
1458(세조 4)∼1491(성종 22). 조선 전기의 학자. 최덕지의 후손, 아버지는 별이다. 김굉필의 문인이 되어『소학』을 배웠으며 뒤에 정여창의 제자가 되었다.『소학』을 실천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김안국·남효온과는 동문 사이였다. 영암의 녹동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최치운 / 崔致雲 [종교·철학/유학]
1390(공양왕 2)∼1440(세종 22).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원량, 아버지는 안린, 어머니는 전인구의 딸이다. 14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 공조참의, 이조참의, 좌승지,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왕명으로『무원록』을 주석, 율문을 강해하는 등
최치원 / 崔致遠 [종교·철학/유학]
신라 말의 유학자. 869년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거기에서 과거급제했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유명한 격문을 지었다. 885년 귀국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만년에는 명산대천을 찾아 두루 다녔다. 유, 불, 선 3교를 조화시키고 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유교의 '인
최태용 / 崔泰瑢 [종교·철학/개신교]
1897-1950년. 목사, 복음교회의 창설자. 호는 시남(是南). 함경남도 영흥 출신. 청년기에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공부하였으며 이 시기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 농업실습지도원으로 2년간 근무하며 신앙활동을 계속하다가 1920년 일본
최태환 / 崔太煥 [역사/근대사]
1897-198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호는 영산(瀛山)이다.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전라북도 정읍(井邑) 출신이다.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 인산일(因山日)에 종이로 백기(白旗)를 만들어 집집마다 달았다. 그도 이 일에 동참하였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일본
최팔용 / 崔八鏞 [역사/근대사]
1891-1922. 2·8독립선언의 조선청년독립단대표 중의 한 사람.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당남(塘南). 함경남도 홍원 출신. 1910년 봄에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몇 달 뒤 일제에 조국이 강점당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오성중학교(五星中學校)를 졸업하였다. 다
최학소 / 崔學韶 [역사/근대사]
191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본적은 강원도 울진(蔚珍)이다.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후손으로, 부친 최익한(崔益翰)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은 2000년 독립운동 공훈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최학송 / 崔鶴松 [문학]
1901-1932. 소설가. 신경향파문학의 대표적 작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각지를 떠돌며 품팔이, 나무장수, 두부장수 등 밑바닥 생활을 했다. 이 체험이 바로 그의 문학의 바탕이 되어, 1924년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탈
최한기 / 崔漢綺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과학사상가(1803∼1879). 적극적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였고 서양의학서인《신기천험》을 저술하는 등 서양학문을 소개하는데 힘썼다. 김정호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나 그의 일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