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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최봉환 / 崔鳳煥 [역사/근대사]
1868-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순천 출신. 1910년 1월 19일 평안남도 순천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중, ‘시장세반대투쟁(市場稅反對鬪爭, 일명 百一稅事件)’을 주도하여 3,000여명의 농민·상인들을 동원하여 시위 항쟁하고, 순천 세무주사 노자와(野澤辰三郞) 등
최서경 / 崔曙卿 [역사/근대사]
1902-1955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서경(崔曙敬)이다. 본적은 평안북도 운산(雲山)이다.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여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산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에 가담하였다. 이 모임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정책과 노선을 지지하였으며
최서해 / 崔曙海 [문학/현대문학]
1901-1932년. 소설가. 본명은 학송(鶴松), 아호는 서해(曙海)·설봉(雪峰) 또는 풍년(豊年). 함경북도 성진에서 소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1910년 아버지가 간도 지방으로 떠나자 어머니의 손에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을 보내었다. 유년시절 한문을 배우고 성
최석봉 / 崔石奉 [역사/근대사]
1880-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동계면(東溪面)이다. 1909년 4월 의병장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陳)에 참가하여 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子先)·박화숙(朴化淑) 등 동지 11명과 함께 순창·임실(任實)·남원(南原) 일대
최석준 / 崔錫濬 [역사/근대사]
1891-1922. 독립운동가. 일명 석준(錫俊)·석유(錫濡). 평안북도 삭주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 상경하여 평안북도 삭주군과 창성군의 거사를 종용받고 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수배를 받자 만주로 건너가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삼고 동지들을
최석호 / 崔碩鎬 [역사/근대사]
1893-1970. 독립운동가. 일명 문석(文錫, 文碩)·문일(文一). 경상남도 합천 출신. 1916년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간부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군사훈련을 수료하였다. 1919년 3·1운동과 보조를 맞추어 간도 용정(龍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
최성모 / 崔聖模 [역사/근대사]
1873-193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서울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북감리교 목사가 되어 해주 남본정(南本町)교회에서 교역생활을 하였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등 민중교화사업과 전도사업을 통하여 계속적인 독립운동을 하였다.
최세득 / 崔世得 [역사/근대사]
1921-미상. 광복군. 일명 왕세일(王世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43년 중국 가이펑(開封) 지구에서 광복군 특파원 장호강(張虎崗)과 접선하여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였다. 그뒤 가이펑 지구에서 지하활동을 전개하여 초모·선전·첩보 활동을 하였으며, 광복이 되자
최세욱 / 崔世郁 [역사/근대사]
1883-1939. 독립운동가. 일명 우화(宇和). 황해도 재령 출신. 보명학교(普明學校)를 졸업하고 동창인 나석주(羅錫疇)·김덕영(金德永)·최호준(崔皓俊) 등과 함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주에 본부를 둔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였으며, 1919년 김덕영을 상해(上
최수봉 / 崔壽鳳 [역사/근대사]
1894-1921. 독립운동가. 일명 경학(敬鶴). 경상남도 밀양 출신. 밀양의 사립 동화학교(同和學校)에 들어갔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폐교되자, 1912년 동래 범어사 안에 있는 명정학원(明正學院)을 졸업하고 1913년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에서 수업하다가 중퇴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