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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근대
최광 / 崔廣 [역사/근대사]
1882-191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이다. 1907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경제학전문과(經濟學專門科)를 졸업하였다. 1908년(융희 2) 영남지방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박정동(朴晶東)·이하영(李夏榮) 등 경
최규창 / 崔圭昌 [역사/근대사]
1908-1949.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영암 출신. 1926년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장재성(張載性)·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왕재일(王在一)·정남균(鄭南均)·박인생(朴仁生)·김광용(金匡溶)·채영석(蔡泳錫)·김한필(金漢苾
최금경 / 崔金莖 [역사/근대사]
1908-195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봉식(崔鳳植)·최량(崔良)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삼동면(三東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가회동(嘉會洞)이다.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 와세
최금봉 / 崔錦鳳 [역사/근대사]
1896-198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1918년 삼숭소학교(三崇小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대조직과 군자금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평안도의 부인들을 규합하여 항일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결
최낙종 / 崔洛鍾 [역사/근대사]
1864-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성에서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20일 구만면의 국천 모래사장에서 900여명의 농민과 함께 봉기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활약하였다. 3.1운동의 주동자로
최능찬 / 崔能贊 [역사/근대사]
1881-193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대동군 금제면 원장 장날인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중, 3월 2일 상사리
최동식 / 崔東植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애국지사. 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늑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고, 또한 조약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 등 5대신의 처형을 주장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였다가 붙잡혀 4
최동오 / 崔東旿 [역사/근대사]
189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학원(崔學源)·지석호(池錫浩). 호는 의산(義山).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그뒤 만주로 망명, 정의부(正義府)에 참가, 김동삼(金東三)·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김원식(
최동환 / 崔東煥 [역사/근대사]
1907-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영암(靈巖)이다. 1931년 6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靈巖邑)에서 일제가 도로보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공사에 동원된 부역인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최동희 / 崔東曦 [역사/근대사]
1890-1927년. 독립운동가. 서울 출신. 1919년 3·1운동 때 서울에서 참여한 뒤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2년 7월 천도교의 독립운동단체인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를 조직하여 부위원장 겸 외교부장에 선임되었으며, 연해주로 건너가 계속 독립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