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총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김도곤 / 金道坤 [역사/근대사]
1890-194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가옥(金可玉)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이다. 1919년 5월 7일 경상북도 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이종현을 보고 군중 300여 명을 모아 일본인 3명을 구타하는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
김도규 / 金道珪 [역사/근대사]
1885(고종 22)-1967.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 자는 인언(仁彦). 전라남도 보성 출신. 아버지는 형국(炯國)이다. 젊었을 때 병서를 즐겨 읽고 진을 치는 법을 익혔다. 1908년 2월 안규홍(安圭洪)이 보성 동소산(桐巢山)에서 의거하자, 그 의병진에
김도숙 / 金道淑 [역사/근대사]
1872(고종 9)-1943. 한말의 의병. 별명은 제헌(濟憲).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11월 의병장 심남일(沈南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에 들어가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1908년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전투, 남평 장담원전투, 해남 성내전투 등에 참여하
김도원 / 金道源 [역사/근대사]
1895-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단체인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들어간 후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집행되었다.
김도태 / 金道泰 [역사/근대사]
1891-195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명신중학교(明新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의 교장과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김도현 / 金道賢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長淵)이다. 1919년 장규섭(長奎燮) 등이 결성한 비밀 결사단체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에 가담하였다. 이때 권총을 구입하여 일본 경찰 및 친일인사들을 처단하고, 임시 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김도현 / 金道鉉 [역사/근대사]
1852(철종 3)-1914.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일제의 침략 의도가 드러나자 의병을 모아 함창·태봉·삼척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나 결국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서 투신하였다. 저서로 <벽산선생창의전말>이 있다.
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