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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강혜원 / 康蕙園 [역사/근대사]
1885-198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동생은 강영승(康永昇)이고, 남편은 김성권(金聲權)이다. 1905년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가서 사탕농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으며,
강화대산리지석묘 / 江華大山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대산리 서촌마을에 있는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1기. 강화읍에서 고려궁지(高麗宮址)를 지나 강화읍성(江華邑城) 북문에 이르면 북문 밖, 한강어구 너머로 멀리 북한지역의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강화도조약 / 江華島條約 [역사/근대사]
1876년 2월 강화부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개항 정책을 취하게 되어 점차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불평등조약이었기에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이 조약은 척사위정세력과 개화 세력 사이의
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 / 江華富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점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1기. 점골 고인돌의 고임돌의 장축(서쪽)의 방향은 거의 편북(10°)으로 놓여 있다. 서쪽 고임돌의 크기는 길이 2.55m이고, 너비(실제로 높이에 해당) 1.55m이며,
강화삼거리유적 / 江華三巨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집터유적. 1966년 국립박물관이 발굴하였는데, 5기의 북방식 고인돌과 그 부근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10여개의 괴석(塊石)이 흩어져 있었다. 발굴이 이루어진 5기의 고인돌은 돌방의 장축이 북서쪽에서 남동쪽(A
강화순 / 姜和淳 [역사/근대사]
1873-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 1월 11일 당시 의병활동을 하던
강화지석묘 / 江華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강화황촌리지석묘 / 江華黃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황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황촌리마을 뒷면의 낮은 구릉에 3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는데 1967년 국립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것은 지상에 노출된 뚜껑돌의 크기가 세로 2.1m, 가로 1.2m, 두께
개국기년 / 開國紀年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갑오개혁 때 채택한 연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을 원년으로 하고 채택년인 1894년을 503년으로 산정하였다. 군국기무처는 6월 28일 신분, 제도, 관습의 개혁과 아울러 모든 국내외의 공문서에 개국기년을 사용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 제도는 이듬
개국원종공신 / 開國原從功臣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원종공신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조선에 들어와 신포상 제도로서 마련된 것이다. 정공신인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가 변경되어 28인의 원종 공신을 책봉한 데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