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 총 2,226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분야 : 역사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 全朝鮮民衆運動者大會 [역사/근대사]
1925년 4월 화요회(火曜會)에서 사회운동의 조직적 통일과 기본방침을 토의하고자 개최된 민중운동자대회. 전조선 민중운동자대회는 1925년 초부터 화요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 각지 농민, 노동자, 청년, 여성, 형평사와 사상운동 단체 등 425개 단체 5백여명의 참가 의
전주백인기농장소작쟁의 / 全州白寅基農場小作爭議 [역사/근대사]
1920년대 후반기에 전주에서 일어난 소작쟁의. 1927년 4월 말경 전라북도 전주의 부농 백인기는 15만 평의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농장을 소작하는 농부가 70여명에 달하였는데 백인기의 착취와 탄압이 일제와 연결되어 더욱 가중되자, 이에 소작인 대표 오영만은
전환국 / 典圜局 [역사/근대사]
1883년에 설치되었던 상설 조폐기관.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근대 화폐를 주조할 상설조폐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전환국을 설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울에 설치되었으나, 1892년인천으로, 1900년에는 용산으로 옮겨졌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옮겨진 표면상의 이유는 서울과
정도홍 / 鄭燾洪 [역사/근대사]
1878년(고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의병장. 전라남도 나주(羅州) 봉황면(鳳凰面) 칠전(七田)에서 태어났다. 1908년(융희 2) 고향 마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600여 명이 참여하여 심남일 부대와
정렬부인 / 貞烈夫人 [역사/조선시대사]
전근대사회에서 정조와 지조를 굳게 지킨 부녀자에게 내려지던 칭호. 국가에서 특이한 행실을 가진 부인에게 시호로 내린 일도 있다. 충효열(忠孝烈)은 유학을 숭상하는 동양의 근본사상이다. 고려 때까지는 여자의 정조와 절개가 그렇게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
정미의병 / 丁未義兵 [역사/근대사]
1907년부터 1910년 사이 일어난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 체결, 군대해산 등을 계기로 전개된 일련의 구국항일무력전의 총칭. 정미의병은 1907년 8월 1일 한국군대의 강제 해산과 이에 반발한 해산군인들의 대일항전에서 비롯되었다. 해산군인들은 군대해산조칙이 내
정빈이씨묘비 / 靖嬪李氏墓碑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靖嬪李氏)의 묘비를 종이에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 족자는 1점, 음기는 2점이 남아 있다. 정빈이씨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조성되어 있고, 1778년(정조 2)에 수길원(綏吉園)이라는 원호를 얻었다. 이
정선민란 / 旌善民亂 [역사/근대사]
1889년 초에 강원도 정선군에서 일어난 민란. 이 난은 군수 이규학의 가혹한 탄압과 착취로 민중의 불만이 누적된 것에 원인이 있으나, 직접적인 동기는 충청북도 괴산의 김태현, 경상북도 용궁의 전한구 등이 군민인 전군직의 선조의 묘를 발굴한 때문이었다. 김태현 등은 다
정성왕후 / 貞聖王后 [역사/조선시대사]
1692년(숙종 18)∼1757년(영조 33). 조선 제21대왕 영조의 원비. 서종제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숙종의 제4왕자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려 달성군부인, 1721년(경종 1) 경종이 몸이 약하고 후사가 없어, 연잉군이 세제로 책봉되자 동시에 세제빈,
정성왕후홍릉비 음기 / 貞聖王后弘陵碑 陰記 [역사/조선시대사]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貞聖王后)의 묘비를 종이를 떠낸 뒤 족자 형태로 장황하여 만든 탑본. 전면은 남아 있지 않고, 음기 족자만 4점이 남아 있다. 정조의 문집《홍재전서》권15에도 비문이 실려 있는데, 내용이 서로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