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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김교훈 / 金敎勳 [역사/근대사]
1880-1934.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학로(金學老)·김훈(金勳)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군대에게 체포되
김구 / 金九 [역사/근대사]
1876-194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가. 1919년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39년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지휘하였다. 1945년 11월 환국하여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다. 1948년 남한의
김구영 / 金龜永 [역사/근대사]
1884-1931.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낙서(洛瑞), 호는 정사(睛沙)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전라북도 진안(鎭安) 출신이다. 증조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조부는 김석기(金奭基)이다. 부친은 김종협(金鍾協)이다. 외조부는 천안전씨(天安全氏) 전명석(全
김국원 / 金國元 [역사/근대사]
1890-1937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덕(性德), 호는 송암(松庵)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전라남도 순천(順天) 승주군(昇州郡) 별량면(別良面)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순신(李舜臣) 막하에서 활약한 김대인(金大仁)
김귀동 / 金貴東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마산(馬山)이다. 1924년 10월 마산노동동우회 집행위원을 맡아서, 12월 마산기자단 결성 때 조선일보 마산지국 기자로서 참가하였다. 1925년 1월 마산독서회 창립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간
김규철 / 金奎哲 [역사/근대사]
1881-1929.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규철(奎喆). 호는 비장(飛將). 충청북도 단양 출신. 1907년 군대해산 뒤 단양·죽령·청풍·제천·영주·예천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명을 인솔하고 다섯 차례나 치열
김기성 / 金基聲 [역사/근대사]
1900-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계성(金啓成)·김선경(金先敬)이다. 본적은 경기도 안성시(安城市)이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안성시의 양성면(陽城面)과 원곡면(元谷面) 일대에서 시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이유석(李裕
김기용 / 金基容 [역사/근대사]
미상-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고향에 거주하면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여 독립군(獨立軍)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1922년 1월 독립군을 위한 첩보 활
김기용 / 金基用 [역사/근대사]
1883(고종 20)-1938. 독립운동가. 일명 명숙(明淑)·사보(士寶). 경상북도 영천 출신. 1928년 1월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진 주동자 장진홍(張鎭弘)과 만나 영천경찰서 및 영천의 부호 이인석(李仁錫)에게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고 투척연습을 하며
김기주 / 金基周 [역사/근대사]
1923-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충청남도 대전(大田)이다. 1940년대에 일본 군대에 강제로 징집된 후 중국 하남성 형문현(荊門縣)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치되었으나, 조국을 위해 탈출을 감행하였다. 탈출 후 중국 중앙군으로 들어가 중앙군 유격대에 배속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