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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복 / 周馥 [정치·법제/외교]
1837-1921. 중국 청말 관료. 이홍장의 막료. 1878년 천진해관도 서리, 1888년부터 1895년까지는 직예안찰사로 임직하였다. 1899년 사천포정사로 임직하면서 청정부의 명에 따라 직예안찰사로 임명되어 이홍장을 도와 열강과 의화 담판의 일을 담당하였다. 19
주본 / 奏本 [정치·법제/외교]
중국의 천자(天子)에게 올리는 글. 긴요한 사건에 대한 상주서(上奏書)이다.『명회전』에 의하면 백성들이 조정에 올리는 글을 주본(奏本)이라 하였고 동궁에게 올리는 글을 계본(啓本)이라 하였는데 주·계본이 모두 세자(細子)를 쓰고 서식이 복잡하여 불편하다고 하여 제본(
주일한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7년 5월 일본 도쿄에 개설. 1905년 12월 폐쇄. 한국은 일본과 조약을 체결한 지 11년 만인 1887년 5월 주일공사관을 도쿄에 개설하고 주일공사를 파견하였다. 주일공사로 임명 부임한 인물은 초대공사 민영준을 비롯해서 이하영, 김가진, 김사철, 고영희, 조
주청사 / 奏請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대중국관계에서 외교관계로 보내던 비정규적인 사절 또는 그 사신. 주청의 내용을 보면, 중국측의 항의에 의한 해명, 정치적 중대사건에 대한 보고, 고명·인신의 수령 등과 같이 요청할 일이 주가 되고, 이밖에 연호 사용, 내정간섭에 대한 항의, 왜정 등의 보고,
주한독일공사관 [정치·법제/외교]
초기 공관은 부들러 영사 때 낙동에 건립. 1883년 이후 독일은 1914년까지 약 3년을 제외하고 대부분 영사 체제로 공관 유지. 낙동의 초기 공관은 조선정부에 임대료를 납부하는 임대공관이었다. 이후 공관은 묄렌도르프가 살던 사저인 전동의 건물로 이사하였다. 한국의
주한러시아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90년 착공하여 1895년 완공.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을 단행한 뒤 1년 동안 거처로 사용. 러시아공사관은 1890년 5월 5일 건물을 착공하였다. 러시아공사관의 설계와 건축을 책임진 사람은 러시아인 건축기술사 사바찐이었다. 사바찐이 설계한 러시아공사관은 서양
주한미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3년 정동에 설립. 초대 조선 주재 미국공사는 푸트. 1883년부터 1905년까지 존속했던 미국공사관의 책임자는 13번 교체되었다. 실제 책임을 맡았던 공사는 총11명이다. 초대 푸트를 비롯하여, 파커, 딘스모어, 허드, 실, 알렌, 모건 등 7명이 정식 임명자이
주한영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4년 설립 결정. 경운궁 부근 정동 4번지 위치. 1890-1892년간 서구식으로 재건축. 공관은 파크스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884년 5월 10일에 일단락되었다. 이후 영국 재무부가 재건축 예산 승인을 거부하여 보수만 이루저지다 1890년 재건축을 시작하
주한일본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0년에 서울데 설립된 일본 외교기관으로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통감부로 이관됨. 역대 주한 공사를 역임한 사람은 초대 하나부사 요시모토, 다케조에 신이치로, 곤도 마스케, 가와키타 도시스케, 가지야마 데이스케, 오이시 마사미, 오토리 게이스케, 이노우에 가오루
주한중국공사관 [정치·법제/외교]
1882년 8월에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이후 조선에 파견된 상무위원이 주한 외교사절의 역할을 수행. 한청통상조약의 체결을 주도한 서수붕이 대한제국주재 초대 공사로 부임하였고, 하태신 증광전이 후임이었다. 1905년 일본의 통감부 설치로 중국 외교사절은 본국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