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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 김광욱 / 金光郁 [역사/근대사]

    미상-19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강서군(江西郡)이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반석면(班石面) 반육리(班六里)에 소재한 반석교회(盤石敎會)의 조진탁(曺振鐸) 장로가 시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 검거되어 실패하였

  • 김광제 / 金光濟 [역사/근대사]

    1866-미상. 민족운동가. 충청남도 보령 출신. 1907년 대구에서 출판사인 광문사(廣文社)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부사장 서상돈(徐相敦)과 함께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 國債一千三百萬과報償趣旨書〉라는 격문을 전국에 발송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제의하였다. 그 요지는 대한국

  • 김광진 / 金光振 [역사/근대사]

    1889(고종 26)∼1964년. 독립운동가. 가명 광해(廣海). 평안북도 의주 출신. 3·1운동 때 의주군 광평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한 뒤 조선총독부 경찰의 눈을 피하여 오동진(吳東振) 등과 남만주로 망명하여 청년단조직에 헌신하였다. 1920년 9월 18일에 미국

  • 김교락 / 金敎洛 [역사/근대사]

    1882-195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함평 출신.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있던 중 1917년 6월 정동근(鄭東根)·양재홍(梁在鴻)·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함께 전라남도의 나주·함평·화순 등지에서 자산가를 대상으로 독립운동에

  • 김교선 / 金敎善 [역사/근대사]

    1892-196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천안시(天安市) 수신면(修身面)이다. 1919년 3월에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홍일선(洪鎰善)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시 갈전면(葛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계획하였다. 3

  • 김교영 / 金敎永 [역사/근대사]

    1858-192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현 경기도 하남시) 동부면(東部面)이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망월리(望月里: 현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의 구장(區長)으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 김교일 / 金敎逸 [역사/근대사]

    1884-1940.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자는 평중(平仲)이고, 호는 영암(永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덕치면(德峙面)에서 태어났다. 계림군(鷄林君) 김곤(金梱)의 18세손이다. 동학 접주 김학원(金學遠)의 3남으로 태어났다.

  • 김교창 / 金敎昌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경기도 강화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송산면 뒷산

  • 김교필 / 金敎弼 [역사/근대사]

    1867-194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만산(萬山)이고, 호는 화암(化菴)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운암면(雲岩面) 화암리(化菴里)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학원(金學遠)이며 김덕원(金德遠)으로도 불리었다. 1894년(고종 31) 갑

  • 김교헌 / 金敎獻 [역사/근대사]

    1868-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대종교인.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보화(普和). 1885년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예조참의·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면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대중계몽운동을 벌였다. 나철(羅喆)의 뒤를 이어 대종교의 제2대 교주에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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