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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 김경태 / 金敬泰 [역사/근대사]

    1874-1921.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으나 일본경찰에 붙잡혀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김경희 / 金慶熙 [역사/근대사]

    1896-1952.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김장환(金章煥)은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을 하다가 쫓기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6일에 제주에 도착하였다. 그는 백부 김시우(金時宇

  • 김공실 / 金貢實 [역사/근대사]

    1871-1930. 전라북도 임실(任實) 출신의 의병. 1907년(융희 1) 9월 이석용(李錫庸)이 의병을 일으켰을 때, 그는 동지 20명을 규합하여 이석용 의병 대장의 진영에 입대하였다. 도로부장(道路副將)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전라북도 장수(長水), 진안(鎭安)

  • 김관묵 / 金寬默 [역사/근대사]

    1894-196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일선(一善)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가조면(加祚面)이다. 1919년 3월 20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場基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일본 헌병들의 무력진압에 의해 김병직(金秉直)·어명

  • 김관보 / 金官寶 [역사/근대사]

    1882-192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석산(石山).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았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 입대한 뒤 김좌진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일본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꾸준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과의 총격전에서 순국하였다.

  • 김관성 / 金觀聲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애국계몽가·사회사업가. 일명 관성(觀星). 평안남도 평양 출신. 3·1운동 뒤 항일독립투쟁을 목적으로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 등과 북간도로 이주하였다. 이때 그들은 간도 지방의 교민단체인 한족회(韓族會)의 비활동성에 불만을 품은 현익

  • 김관오 / 金冠五 [역사/근대사]

    1901-1965. 독립운동가. 호는 우당(愚堂). 서울 출신. 1919년 보성중학교 재학중에 3·1운동에 참가하여 선전문을 비밀리에 배부하다가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경성지방검사국으로 이송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그뒤 평강에 있는 친척집에 피신

  • 김관용 / 金寬龍 [역사/근대사]

    1900-197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승려. 본적은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해미면(海美面)이다. 충청남도 서산군 해미면에 위치한 해미공립보통학교(海美公立普通學校)에서 수학하였다. 학생으로 재학 중 1919년 3월 24일 이계성(李啓聖)로부터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 김광서 / 金光瑞 [역사/근대사]

    1883-미상. 독립군 지휘관. 본관은 시흥. 아명은 현충(顯忠), 별명은 경천(擎天). 함경북도 북청 출신. 대한제국의 포병 부령(副領)이며,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역임한 정우(鼎禹)의 아들이다. 1911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23기졸업생으로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 김광용 / 金匡溶 [역사/근대사]

    1908-197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시(羅州市) 본양면(本良面)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인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朴仁生)·안종익(安鍾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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