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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예술인
홍정희 / 洪禎禧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발레연구회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 전남 목포 출신. 아버지 홍주표와 어머니 김이순의 3남3녀 중 셋째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무용을 시작하여 12세가 되면서 목포여자중학교 무용교사 정춘혜(일본 다까라스까예술학교)에게 본
홍해성 / 洪海星 [예술·체육/연극]
1893-1957. 연출가. 본명은 재원(在遠). 대구 출생. 1920년 봄에는 김우진(金祐鎭)·조명희(趙明熙)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1921년에는 이 회원들이 주동이 된 동우회 순회연극단의 일원으로서 조명희가 쓴 〈김영일(金英一)의 사(死)〉의 연출을
황무봉 / 黃舞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부산 일대를 중심으로 지역 무용 활성화와 후진 양성에 공헌한 무용가.신무용가·안무가. 일본 후쿠오카(福岡)에서 1930년 10월 27일 황지용(黃池龍)과 천두연(千斗蓮)의 6남 중 3남으로 출생했다. 일본 아츠카에서 중학교(5년제)를 다닐 때 특별활동 시간에
황성하 / 黃成河 [예술·체육/회화]
1891-1965. 한국화가. 호는 우청(又淸). 개성 출생. 개성이 낳은 명성 높은 4형제 서화가(宗河·成河·敬河·庸河) 중 둘째로 지두화(指頭畵)의 명인이었다. 산수·인물·영모·신선도 외에 서예에도 능하여 조선미술전람회(鮮展)의 서예 부문에도 입선한 바 있으며,
황술조 / 黃述祚 [예술·체육/회화]
1904-1939년. 서양화가. 호는 토수(土水). 경상북도 경주에서 대부호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하여 1930년에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개성의 호수돈고등여자보통학교와 개성상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작가생활을 시작
황진이 / 黃眞伊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박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등을 지은 기녀.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朴淵)」·「영반월(詠半月)」·「등만월대회고(登滿月
황철 / 黃鐵 [예술·체육/사진]
1864-1930. 사진가·서화가·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무명각주(無名閣主). 한성부(漢城府) 출생. 자헌대부 규장각제학 윤수(潤秀)의 둘째 아들이다. 서화가로서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은 사진에서 떠난 이후로, 1913년부터는
황해 / 黃海 [예술·체육/영화]
1922-.영화배우. 본명은 전홍구, 강원도 장전 출생. 1939년 당시 황금좌 전속악극단 성보에 입단하여 배우 및 가수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43년 만주 천진에서 악극단 신태양에 입단하여 중국 각지를 순회공연하다가 항주에서 광복을 맞아 1946년에 귀국했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