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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구연흠 / 具然欽 [역사/근대사]
1883-1937년.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독립운동가. 출신지는 경기도 양주(楊州)이다. 부친은 철원군수를 지냈다. 1922년 이후 무산자동맹회와 신사상연구회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5년 6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
국영환 / 鞠榮煥 [역사/근대사]
1871-193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영화(永化), 호는 곤암(坤庵)이며,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운곡리(雲谷里) 봉산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당시 어장(御將) 조영하(趙寧夏)에게서
국하현 / 鞠夏鉉 [역사/근대사]
1868-1919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모(聖模), 호는 송은(松隱)이며, 본관은 담양(潭陽)이다.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우월리(牛月里) 출신이다. 부친은 국치술(鞠致述)이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익산(益山)에 머
권기옥 / 權基玉 [역사/근대사]
1903-1988. 독립운동가. 평양 출신. 독립운동가 이상정(李相定)의 부인이다. 1919년 평양 숭의학교(崇義學校) 재학시 3·1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3주일 동안 구류되었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락원인 임득삼(林得三)·김정직(金鼎稷)·김순일(金淳一)
권기일 / 權奇鎰 [역사/근대사]
1886-1920. 독립운동가. 본관은 안동. 본명은 혁린(赫麟).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2년 만주 봉천성(奉天省)으로 망명하여 이시영(李始榮)·김좌진(金佐鎭) 등 항일지도자들과 접촉하면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3월 부민단(扶民團)·
권도용 / 權道溶 [역사/근대사]
1878-1959. 일제 강점기 유학자·독립운동가·교육자. 자는 호중(浩中)이고, 호는 추범(秋帆)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신지는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이다. 부친 권재모(權在模)와 모친 진양하씨(晉陽河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곽종석(郭鍾錫
권동진 / 權東鎭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1-1947). 호는 애당(愛堂)·우당(憂堂)·실암(實菴). 거문도첨사 재직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서 사귄 손병의의 영향으로 천도교에 입교해 민족대표로 3.1운동을 이끌었다. 《개벽》의 편집에 참여
권병덕 / 權秉悳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천도교인(1867-1944). 호는 청암(淸菴)·정암(貞菴)·우운(又雲). 동학교도가 되어 1894년(고종 31)에 손병희와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다. 1908년(융희 2)에 천도교에 입교했다.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했다. 196
권상익 / 權相翊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3-1935). 을사조약에 격분하여 만국공관(萬國公館)에 보낼 호소문을 작성하였고, 3·1운동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운동에 참가하였다. 1925년 독립군기지 건설을 위한 군자금을 제공하고 적극 지원하였다. 문집으로 《성재집》 2
권상중 / 權相中 [역사/근대사]
1882-1929년.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 본명은 상중(尙中), 아명은 석출(石出). 자는 윤집(閏集). 경상북도 청송 출신. 아버지는 복규(福奎),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체결로 인하여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이 자행되자 의병장 김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