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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예술인
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한영숙 / 韓英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고전무용가. 충청남도 천안출생. 13세때 할아버지 성준(成俊)으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첫 무대공연으로 1937년 10월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한성준무용발표회에서 승무·학
함귀봉 / 咸貴奉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교육무용연구소 소장, 문교부예술위원회 무용위원, 현대무용가집단 대표 등을 역임한 무용가.교육자. 일본 동경에서 주로 아동교육무용 혹은 건강무용운동(健康舞踊運動)을 주도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 교육무용을 위해 힘썼다. 6·25전쟁 때 북한으로 갔다.
함세덕 / 咸世德 [예술·체육/연극]
1915-1950년. 극작가. 전라남도 목포 출생. 인천광역시 강화에서 자라, 서울 선린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찍부터 극작가의 꿈을 가지고 충무로의 일한서방(日韓書房)에 취직하여 많은 책을 읽는 한편 유치진(柳致鎭)에게 개인적으로 극작수업을 받았다. 1936년 단막
함화진 / 咸和鎭 [예술·체육/국악]
1884-1948년. 한말·일제강점기의 음악인. 원명은 화진(華鎭). 자는 순중(舜重), 호는 오당(梧堂). 본관은 양근(楊根). 뛰어난 이론가이며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가야금에도 출중하였다. 세습적인 악사집안으로 증조부 윤옥(潤玉)은 순조·헌종 때의 악사, 할아버지
현철 / 玄哲 [예술·체육/연극]
1891-1965. 근대극운동의 선구자. 본명은 희운(僖運). 필명은 현당(玄堂)·효종(曉鍾)·효종생(曉鍾生)·세류옹(世瘤翁)·해암(海巖). 부산 출신. 개화기에 일본어 역관을 지낼 만큼 매우 개화가 빠른 집안 출신이었다.
홍난파 / 洪蘭坡 [예술·체육/현대음악]
1897년∼1941년. 작곡가·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본명은 영후(永厚)이다. 일제강점기에 널리 애창되었던 가곡 〈봉선화〉의 작곡자이기도 하며, 이밖에 다양한 문예활동을 통하여 일제강점기 하의 한국문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경기도 화성군 남양읍 활초리에서 출
홍장 / 紅粧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강원도안렴사 박신과 관련된 기녀. 시조작가로서 그녀가 지은 시조 1수가 전한다. 박신(朴信)이 강원도안렴사로 갔을 때 그녀를 사랑하여 아주 깊이 정이 들었는데,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갈 때 강릉부윤으로 있던 조운흘(趙云仡)이 “홍장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