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려 총 1,310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려
정부원 / 征婦怨 [문학/한문학]
고려말에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한시. 칠언절구 2수. 『포은집(圃隱集)』 권1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출정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괴로워하는 한 아낙의 호소를 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려 말기의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서, 외침이 빈번하여 많은 남정네들이 국경지대로
정산 / 定山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원사(原詞)는 전하지 않으며, 노래의 내력만이 『고려사』 권71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전하고,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공주의 속현인 정산의 백성들이 굽은 나무의 얽힌 마디를 비유하여
정서 / 鄭敍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 『과정잡서』, 「정과정곡」 등을 저술한 문인.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항(鄭沆)의 아들이다. 인종비 공예태후(恭睿太后) 동생의 남편으로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음보로 내시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으며, 1151년(의종 5)에 폐신 정함(鄭諴)·김존중(金存中)의
정석가 / 鄭石歌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속요(俗謠). 『악장가사』와 『시용향악보』에 전한다. 『고려사』 악지(樂志)에는 그 배경설화나 명칭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어 고려 속요라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형식적 장치와 주제 및 정조(情調)로 보아 속요와 동질적이므로 일반적으로
정선향교 / 旌善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에 있는 향교. 1110년(예종 5)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05년(선조 38)에 대홍수로 향교가 유실되자 향유(鄕儒) 정유열(鄭有說)·유대방(劉大芳)·최흥립(崔興岦) 등이
정습명 / 鄭襲明 [종교·철학/유학]
?∼1151(의종 5). 고려 중기의 문신. 영일정씨 형양공파의 시조, 아버지는 정후감으로 부호장을 지냈다. 주로 간관 직을 맡아보았던 정습명은 왕실의 사부로서 의종을 훈육하고 보필하는데 사명을 다하였다. 예부시랑, 추밀원지주사 등을 역임하였다. 병이 들어 김존중이 대
정시자전 / 丁侍者傳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 식영암(息影庵)이 지은 가전체 작품. 『동문선』 권101에 전하고 있으며, 지팡이를 의인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고려시대의 여타 가전들과는 좀 다른 파격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두에서 성명과 가계를 얘기하지만, 본전에서는 작가가 입동(立冬)날 새벽에 졸고
정주 / 貞州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개풍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1018년(현종 9) 개성현의 속현이 되었고 상서도성(尙書都省)의 직할지가 되었으며 경기(京畿)지역이라고 칭하였다. 1108년(예종 3) 지승천부사(知昇天府事)로 바꾸고 1310년(충선왕 2) 지해풍군사(知海豊郡事)
정주 / 靜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려의 송산현(松山縣)이었는데, 1033년(덕종 2)에 토성을 쌓고 정주진(靜州鎭)이라 하였다. 이곳에 주민 1,000호(戶)를 옮겨 살게 하였으며, 정주방어사를 두었다. 문종 때 정주를 포함한 5개성이 성은 크고 백성이 작다 하여
정토삼부경 / 淨土三部經 [종교·철학]
정토교의 소의 경전이 되는 세 가지의 책. <무량수경> 2권, <관무량수경> 1권, <아미타경> 1권의 3부이다. 정토사상을 설하고 있는 불경은 약 650여 부의 대승경전 중 200여부나 되는 것으로 그 수가 방대하다. 정토경전을 바탕으로 용수의 저술인 <대지도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