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총 672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의병·독립운동가
고창희 / 高昌熙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1919년 백기환(白基煥)·정찬도(鄭燦道) 등과 결의를 하고 만주(滿洲) 서간도(西間島)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대한독립
고채주 / 高采柱 [역사/근대사]
1861-1920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통영 출신. 일명 석주(錫柱). 1901년부터 1909년까지 미주(美洲)에서 동포의 단결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귀국하였으며 통영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01년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익혀서 우리민족을 깨우치기로 결심
고태영 / 高泰英 [역사/근대사]
1891-1941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구경을 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선(金明善
고평 / 高平 [역사/근대사]
1886-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본적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이다. 1918년 2월 중국 국자가(局子街) 하장리(下場里) 연길(延吉) 도윤공서(道尹公署) 외교과원 박동원(朴東轅)의 집에서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김영학(金永學)
고형림 / 高亨林 [역사/근대사]
1907년∼1975년. 독립운동가. 경상북도 예천 출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가 대판(大阪)·나고야(名古屋) 등지에서 노동에 종사하다가 사진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한때 예천군 농회(農會)지도원으로 있었다. 생활난으로 1939년 8월 만주 안동성(安東省)으로 이주,
고휴규 / 高烋圭 [역사/근대사]
1884-1954.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제주도 성산읍(城山邑) 수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제주의 민족주의 계열의 성산청년회가 주최한 성산면 체육대회에서 한국인 선원과 일본인 선원 등 2백여 명과 벌어진 싸움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고휴규는
공진원 / 公震遠 [역사/근대사]
1907-1943. 독립운동가. 일명 고운기(高雲起). 호는 학은(鶴隱). 창준(昌俊)의 아들이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북만주로 가서 청년운동과 교육사업에 주력하였다. 1930년 7월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이 당에서 조직한 한국독립
공창준 / 公昌準 [역사/근대사]
1879-193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포(金浦)이고, 본적은 함경남도 문천(文川)이며, 출신지도 함경남도 문천이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문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 후 홍범도(洪範
곽경렬 / 郭京烈 [역사/근대사]
1901-1968. 독립운동가. 전라북도 김제 출신. 1915년 항일비밀결사인 광복단에 입단하여 한훈(韓焄)·유장렬(柳章烈) 등과 함께 박곡(朴谷)·벌교(筏橋) 등지의 친일파 부호를 숙청하였으며, 오성(烏城)의 일본헌병분견대를 습격하는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
곽낙삼 / 郭洛三 [역사/근대사]
1864-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조국을 위해 의병 활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