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고대 총 1,19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고대
용변소서설화 / 龍變小魚說話 [문학/구비문학]
신라 원성왕 때, 당나라 사신이 신라에 들어와 세 곳의 용을 물고기로 변하게 하여 가지고 가려는 것을 왕이 막았다는 설화. 신이담(神異譚) 중 초인담(超人譚)에 속한다. 『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 제2원성대왕조에 실려 있다. 이 설화는 호국룡의 변신을 통하여 외
용성 / 龍城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수원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상홀현(上忽縣, 또는 車忽)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거성(車城)으로 고쳐 당은군(唐恩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가 940년(태조 23) 용성으로 고쳤다. 이곳의 위치가 수원 남쪽 80리 지점이므로 아산만 가까이 넓은
용성국 / 龍成國 [지리/인문지리]
신라건국기 주변에 있던 소국. 석씨(昔氏)의 시조이며 왕인 탈해(脫解)가 태어난 나라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일명 정명국(正明國)ㆍ완하국(琓夏國)ㆍ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파나국(多婆那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용성국의 함달
용신창사설화 / 龍神創寺說話 [문학/구비문학]
용신이 출현하여 사찰을 짓는 내력을 말한 설화. 이야기의 구성으로 보면,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용과 나라를 지키는 지킴이라는 상이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야기가 불교에서 유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용이 불법도 수호하고 불국토인 나라도 수호한다는 기능적 차이는
용주 / 龍州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용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옛 땅인데 발해의 침입으로 인하여 한때 여진족의 근거지였으나, 고려 초에 안흥군(安興郡)을 설치하였다. 1014년(현종 5) 용주방어사를 두었고, 그 뒤 용만부(龍灣府)로 고쳤다가 1311년(충선왕 3) 다시 용주로 바꾸어
우견현 / 牛見縣 [지리/인문지리]
삼국시대 백제의 지명(地名). 본래 백제시대에는 마시산군(馬尸山郡)에 속하였으며, 757년(경덕왕 16)에 경덕왕이 목우현(目牛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로 비정하고 있다.
우계 / 羽溪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강릉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 또는 玉堂)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우계로 고쳐 삼척군의 속현으로 하였다. 1018년(현종 9) 강릉에 예속시켰고, 조선 세조 때강릉대도호부에 진관(鎭管)이 설치되면서 우계면으로 직촌(直村)이 되었다. 191
우곡 / 牛谷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곡성군 서부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마한과 백제시대의 옛 지명. 마한의 연맹왕이 신하들과 국사를 논하고 있을 때, 우곡성주(牛谷城主) 주근(周勤)의 밀사가 달려와 백제의 온조왕이 웅천(熊川)주 01)에 책을 쌓고 우곡성을 넘본다는 보고를 하였다. 마한이
우발수 / 優渤水 [지리/인문지리]
고구려 「동명왕신화」에 나오는 못[澤]의 이름.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어머니 유화(柳花)가 부모의 허락없이 해모수(解慕漱)와 혼인하였다는 이유로 아버지 하백(河伯)에게 쫓겨나, 후일 부여왕 금와(金蛙)에게 발견될 때까지 살았다고 하는 곳이다. 『구삼국사(舊三國史)』에서
우봉 / 牛峰 [지리/인문지리]
황해도 금천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우잠군(牛岑郡, 또는 牛嶺·首知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에 우봉(牛峰)으로 고쳤다. 1015년(고려, 현종 6)에는 평주(平州, 지금의 平山)의 속현이 되었고, 1062년(고려, 문종 16)에는 경기도 개성부(開城府)에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