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 예술인 총 138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 예술인
임기준 / 林基俊 [예술·체육/국악]
1868-1940년. 가사와 시조의 명창. 서울 출신. 1939년 6월부터 9월까지 이왕직아악부 임시촉탁으로 부임하여 이름난 가인(歌人) 하규일(河圭一)이 부르지 않던 12가사 중 〈수양산가 首陽山歌〉·〈처사가 處士歌〉·〈양양가 襄陽歌〉·〈매화타령〉의 네 곡과 사설지름
임성구 / 林聖九 [예술·체육/연극]
1887-1921년. 신파극(新派劇)초창기의 연극인. 서울 출생. 어려서 서당에 다녔을 뿐,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20세 때에 일본공사관이 있던 남산의 종현성당(鐘峴聖堂)뒷문 근처에 살면서 때마침 그곳의 일본인 극장에서 공연되던 신파극이나 가부키(歌
임성남 / 林聖男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국립무용단 초대단장, 국립발레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안무가, 발레교육자.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4학년 때 전주 도립극장에서 있었던 한동인(韓東人) 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947년 4월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인 발레단의 공연
임승복 / 林勝福 [예술·체육/연극]
1912-미상. 일제 강점기 극작가. 필명은 임선규(林仙圭)이고, 개명한 이름은 임중랑(林中郞)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관동리(官洞里)이다. 부인은 여배우 문예봉(文藝峰)이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공립강경상업학교 3학년을 수료한 뒤, 1931
임용련 / 任用璉 [예술·체육/영화]
1901-미상. 양화가. 일명 임파(任波).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3·1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중국으로 탈출, 한때 난징(南京)의 금릉대학(金陵大學)에 다녔다. 1922년 중국인을 가장한 ‘임파’라는 이름의 중국여권으로 미국에 건너가
장추화 / 張秋華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대한예술무용협회, 청년무용집단, 현대무용가집단 등에서 활동한 무용가.현대무용가. 1936년 일본 도쿄에 있는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찾아가서 춤에 입문하였다. 해주 여고를 졸업하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서 최승희 문하가 되었다. 장추화는 최승희
장판개 / 張判介 [예술·체육/국악]
1885-1937년. 조선 고종 때부터 일제 초기까지 활약한 판소리 명창 중의 한 사람. 호는 학순(鶴舜). 전라북도 순창 출생.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풍류나 판소리에 능하였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소리를 배웠다. 천성적으로 재질이 있고 목소리가 좋아서 집안사람
장홍심 / 張紅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동양무용연구소장, 장홍심고전무용교습소장으로 활동한 무용가.한국전통무용가. 1914년 함흥시 성천동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월순이다. 1925년 12세 때 함흥권번에 입적하여, 정남희(1905~1984)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익혔다. 춤은 당시 권번 소속 춤
정민교 / 鄭敏僑 [문학/한문학]
조선후기『한천유고』를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정차징(鄭次徵)이며, 어머니는 진주 강씨(晉州姜氏)로 부호군 강사일(姜泗逸)의 딸이다. 4남 중 막내이며 시인 정내교(鄭來僑)의 동생이다. 어렸을 때에는 형 정내교에게서 글을 배웠다. 8세 때에는 “눈 녹으니 청
정소산 / 鄭小山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국악협회 경북지부장을 역임한 무용가.전통무용가. 1904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했다. 다섯 살 당시 대구기생조합 김수희 조합장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해 부산의 봉래권번, 수원의 화인청 등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17세에는 대정권번에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