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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 > 근대사
  • 강인수 / 姜人壽 [역사/근대사]

    1900-1992. 독립운동가. 이명은 팔수(八壽)·양검(楊儉). 경상남도 밀양 출신. 김원봉(金元鳳)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10월 중국군 간부 양성학교인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4기 보병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뒤 중국군 장교로

  • 강인수 / 姜寅秀 [역사/근대사]

    1869-1932년. 독립운동가. 호는 백서(白棲). 경상북도 안동 출신. 한학자 영숙(永淑)의 아들이다. 1894년 강원도관찰부의 주사로 등용되어서 근무하다가 1899년에 사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상경하여 동지들을 규합, 동우회(同友會)를 결

  • 강일용 / 姜日鎔 [역사/근대사]

    미상-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다.1925년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통합 조직된 신민부(新民府)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많은 일본 관직자들을 저합자촌(樗合子村)에서 죽였다. 이 일로 인해 1930년 길림성(吉林

  • 강재천 / 姜在天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송석(松石). 1907년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나 전라남도 장성에서 패전한 후 산중에 은거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후에 대종교에 입교하여 참교·지교를 역임하였으며,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항일무장투쟁에

  • 강제하 / 康濟河 [역사/근대사]

    1891-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19년 4월 1일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신용철(申容澈)·강이달(姜利達)·선우명(鮮于明)·선우황(鮮于晃)·문창수(文昌洙)·한선학(韓善學) 등과 함께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대한독립청년단

  • 강제희 / 姜濟羲 [역사/근대사]

    1891-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힌 일이 있으며, 그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등과 연결되어 연통제(聯通制)의 국내책임을 맡아 국내

  • 강진 / 康晋 [역사/근대사]

    1912-1976.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평안북도 창성(昌城)이다. 1920년 중국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1926년 정의부중집위(正義府中執委) 김활우(金活右)의 추천으로 흥경현립중학교(興京縣立中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재학 중 양세봉(梁世奉)의 첩보

  • 강진강재일사 / 康津剛齋日史 [역사/근대사]

    1891년 7월부터 1903년 4월까지 박기현이 전라남도 강진의 향촌생활을 중심으로 작성한 일기. 전라남도 강진에 살았던 박기현이 1891년(고종 28) 7월부터 1903년 4월까지의 향촌생활을 기록한 일기이다. 박기현은 본관이 밀양으로, 강진 옴천에서 출생하여 병영과

  • 강진건 / 姜鎭乾 [역사/근대사]

    1885-196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이다. 1909년(융희 3) 고향에 협성학교(協成學校) 분교를 설립하였다. 1910년(융희 4) 3월 만주(滿洲)로 망명을 떠나 토지개척사업과 민족교육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

  • 강진원 / 姜振遠 [역사/근대사]

    1881-1921. 의병장. 본관은 진주. 일명 진원(震遠). 자는 형원(亨遠), 호는 성산(聖山). 전라남도 승주 출신. 유년시절에 손오병서(孫吳兵書) 등을 탐독하면서 한문을 수학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봉기한 의병진에 가담하였으나 전공을 세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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