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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김달현 평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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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북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김달현 평정서
· 키워드김달현, 북조선청우당,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 대표주제어김달현
· 설명문김달현 평정서
· 발신자레베데프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대표표제어: Характеристика на председателя ЦК партии Чендоге(Молодых Дружей) Сев. Кореи и зам. председателя президиума верховного народного собрания Корейской Народ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Республики - Ким Дар Хен
산출물명: ЦАМО,ф.142,оп.540936,д.1,лл.80-82.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Ким Дар Хен
면수: 3
발신일: 1948.12.25.


번역문


북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김달현 평정서
1884년 7월 24일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 장흥리(село Дянхын)의 소작농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1890년 4월부터 1901년 2월까지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다. 1903년 4월부터 1909년까지 수원 농림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로 복무하였다. 1910년부터 1913년까지 일본 아오모리(靑森)시 축산기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3년부터 1918년까지 조선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으며, 이로 인해 1년 4개월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1920년 ‘천도교’ 사에 가입하였다. 1926년부터 함경남도 고원에서 활동하면서 소작인들의 반일투쟁을 조직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차례 일본인들에게 체포되었다.
1945년 8월 15일부터 고원군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천도교’ 사의 위원장으로 복무하였다.
1946년 2월 24일 북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7년 2월 20일 북조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김달현은 북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당 활동을 북조선에서의 민주개혁을 수행하고 지지하도록 인도하였다. 청우당은 인민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시행하는 제반조치들을 지지해 왔다.
김달현은 자신의 활동에서 소련을 지향하고 있으며, 조선 문제에 대한 소련의 제안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당내 우익분자들인 ‘낡은 조류의 지지자들’에 대한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그 투쟁은 철저하거나 단호하지 못하다. 그 결과 청우당 중앙위원회와 도당의 지도급 일꾼들 중 일부가 당의 우경화를 기도하고 있고, 조선 문제에 대한 유엔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으며, 북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탈퇴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분자들은 김달현으로부터 마땅한 반격을 받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련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의 지지를 얻기까지 하고 있다.
김달현은 로동당원들이 정권기관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불만을 표시해 왔다. 현재 나라의 정치생활에서 청우당은 적극성인 활동을 수행하지 않고 있으며, 당원들에게 ‘천도교’ 교리를 선전하고 당 내부적인 활동을 하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달현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해명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필요한 결론을 도출해나가고 있다. 남조선청우당과의 관계는 단절되지 않았으며, 남조선에 자기의 일꾼들을 자주 파견하고 있다.
모든 당원들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우익적인 경향의 분자들은 그의 입장을 좌익으로 간주하면서 그의 권위를 훼손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청우당 내의 진정한 사태 정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조직적 능력이 불충분하다. 당 지도부에는 당사업에 필요한 경험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당의 실질적 지도자라기 보다는 명예직에 가깝다.
표면상 항상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헌신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달현 개인과 청우당 중앙위원 가운데 일부는 내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그들에게 제시된 자리 수와 그 비중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당 노선을 실현하는 실천 활동 속에서 때때로 우경분자들의 압력에 양보하고 있으며, 남조선청우당 중앙위원회와 ‘천도교’ 교단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로 인해 현재의 당 방침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발언들을 통해 언제나 소련에 대한 존경과 충실성을 강조하고 조선 문제에 대한 소련의 정책을 찬성하지만, 이러한 진술의 진실성에 대한 의혹이 그치지 않고 있다. 계급투쟁이 엄혹해지는 순간에는 동요하면서, 당내 우파의 영향 하에서 민주주의 건설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국장 N. 레베데프(Н. Лебедев) [서명]

1948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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