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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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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1948년 4월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자료〉
· 키워드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 대표주제어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 설명문 
· 발신자시티코프 상장
· 수신자전연방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 수슬로프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대표표제어:  
산출물명: РГАСПИ,ф.17,оп.128,д.615,лл.1-160.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Совместное Совещание представителей политических партий и обществен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Северной и Южной Кореи
면수: 160
발신일: 1948.07.24.
수신일:  

번역문

연해군관구 사령관 대리
1948년 7월 24일
No.3488

모스크바, 전연방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
수슬로프 동무 귀하

1943년 4월 19-23일 평양에서 거행된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의 총괄 자료를 귀하에게 보냅니다.

상장 Т. 시티코프

<1948년 4월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자료>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축소연석회의

4월 19일 11시 50분 평양에서 남북조선의 제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축소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는 13시 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회의에는 북조선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대표하여 노동당의 김일성과 김두봉, 민주당의 최용건, 천도교청우당의 김달현, 직업총동맹의 최경덕, 농민동맹의 강진건, [민주]여성동맹의 박정애, 민주청년동맹의 리영섭[리영섬?], 공업기술연맹의 리평제, 보건연맹의 리동화, 항일[애국]투사후원회의 김일호, 문학예술총동맹의 리기영, 농업과학자연맹의 김영하, 적십자사의 리호림, 불교연합회의 김세율, 기독교도연맹의 강량욱 등 총 31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남조선의 정당과 사회단체를 대표해서는 좌파 9명, 중도파 5명, 우파 2명 등 총 16명이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이를 인물별로 보면, 노동당에서 허헌, 인민공화당에서 김원봉, 신진당에서 리용, 사회민주당에서 장권, 민주한독당에서 김일청, 근로인민당에서 백남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서 허성택, 민중동맹에서 라승규, 문화단체총연맹에서 임화, [민주]여성동맹에서 전칠성[?], 전국농민[조합]총연맹에서 손일수, 조선건국청년회에서 이강무, 유교연맹에서 김응섭, 기독교[민주]동맹에서 김창준, 전국불교도총연맹에서 장상봉[?], 민주애국청년동맹에서 고광옥이 대표로 나왔습니다.

연석회의의 준비와 진행을 맡은 조직위원회 의장 주영하의 제안과 회의 참석자들의 재청에 따라 축소회의 의장으로 나선 김두봉은 다음과 같이 개회를 선언하였습니다:
“우리는 조금 늦게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김구, 김규식 양인이 회의 준비를 위해 개회를 좀 늦춰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의 요청을 수용하여 회의를 연기하였으나 시간 관계상 더 이상 연기할 수 없어 우리는 오늘 회의를 개최합니다.
조선인민은 36년 동안 일제의 압제 하에 있었지만, 용맹한 소련 군대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조선인민을 해방시켰습니다. 미군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미군은 조선 땅에 한 달 늦게 진주하였습니다. 우리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린 나라는 군대 철수를 제안하였으나, 자국 군대의 철수를 원치 않는 미국인들은 그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의 독립을 진정으로 원하고 우리 인민의 자유를 위해 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김구와 김규식 양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회의를 미룰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5월 10일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기에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개 정당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
때문에 조선문제의 해결을 미룬다는 것은 불가한 일이고 오늘 회의를 시작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조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에 도착한 남조선의 대표자들을 여기서 만나는 게 행복하고 기쁩니다. 나는 여기서도 또 확대연석회의에서도 여러분들이 우리 조국의 독립을 촉진할 귀중한 제안을 하시리라 기대합니다. 나는 여기 참석한 사람들 모두를 뜨겁게 환영하며 축하합니다.”

김원봉이 남조선인민공화당의 축사 차례에 등단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인민의 긴박한 문제는 우리나라에 독립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일 수 있던 데에는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의 대표자가 여기에 모여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한, 본 회의의 주창자인 김일성 위원장의 공이 가장 큽니다. 나는 우리가 여기에서, 또한 확대회의에서도 만장일치의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미국인들이 남조선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는 지금 더욱 필요합니다.”

이를 이어 김두봉이 확대회의 의사일정과 문제협의절차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주영하가 확대회의 의사일정에 관한 제안을 내놨고, 회의는 만장일치로 그의 제안을 수용하여 확대회의 의사일정을 다음과 같이 확정하였습니다:
1. 조선의 정치정세에 관한 보고. 보고자는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 대표 김일성,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대표 박헌영.
2. 남조선에서의 총선거 실시 및 단독정부 수립에 관한 UN 소총회 결정에 대한 반대투쟁 조치들에 관한 보고. 보고자는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대표 허헌.

뒤를 이어 등단한 김일성이 이렇게 발언하였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의 제 정당‧사회단체의 대표자들을 많이 만났고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때문에 여기 참석한 사람들이 연석회의의 목적을 알고 있으며 이에 관해 상세히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일성은 조선의 상황을 간략히 설명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개인적인 대화에서 논의한 그 문제들을 연석회의 의사일정에 포함시켜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 다음에 김일성은 확대연석회의를 진행함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정치적 방침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a. 조선인민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총회와 임시위원회의 비법적 결정에 항의하고, UN위원단이 조선에서 즉각 떠날 것을 요구한다.
b. 조선의 현 임시분할을 고착화하고 조선의 통일과 독립회복을 파탄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를 거부하라고 조선인민에게 호소한다.
c. 외국군대의 철수에 관한 소련의 제안을 환영하며, 조선에서 외국군대가 조속히 철수할 것을 요구한다.
d. 외국군대가 철수 후에 조선 전역에서 총선서를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

근로인민당 대표로 등단한 백남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정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나는 김일성 위원장의 제안에 동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이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남조선의 정세에 관해 언급하며 백남운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군은 남조선을 자기 식민지로 여기면서 식민지에서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서 나는 북조선이 진보적인 길을 가고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은 바로 김일성 위원장의 방침인 것입니다. 이는 여기서 김일성 위원장 자신에 의해 서술되었는데, 우리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사람은 당연히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확대연석회의

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북조선의 제 정당‧사회단체의 주도로 소집된 남북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가 평양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연석회의 대표자들의 구성:
16개 정당과 40개 사회단체에서 온 695명의 대표자가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북조선에서 300명이 대표로 참석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노동당에서 김일성과 김두봉을 필두로 60명, 민주당에서 최용건을 위시한 40명, 천도교당에서 김달현 등 40명, 직업동맹에서 최경덕 등 25명, 농민동맹에서 강진건 등 25명, 민주여성동맹에서 박정애 등 25명, 민주청년동맹에서 리영섬 등 25명, 공업기술연맹에서 리평제 등 9명, 보건연맹에서 리동화 등 7명, 항일[애국]투사후원회에서 김일호 등 10명, 문학예술총동맹에서 리기영 등 10명, 농업과학자연맹에서 김영하 등 5명, 적십자사에서 리호림 등 7명, 불교연합회에서 김세율 등 6명, 기독교도연맹에서 강량욱 등 6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13개 정당과 28개 사회단체의 대표자 395명이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좌파 정당과 사회단체.
노동당에서 박헌영과 허헌을 위시한 41명, 인민공화당에서 김원봉 등 16명,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서 허성택 등 22명, 농민동맹에서 손일수 등 37명, 민주여성동맹에서 류영준 등 26명, 민주애국청년동맹에서 고광옥 등 56명, 문화단체총연맹에서 임화 등 12명, 재일조선인연맹 서울지부에서 리병섭 1명, 전국불교도총연맹에서 장상봉 1명, 기독교[민주]동맹에서 김창준 등 3명, 전국유교연맹에서 김응섭 등 3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도파 정당과 사회단체.
근로인민당에서 백남운을 위시한 23명, 신진당에서 리용 등 9명, 민주한독당에서 김일청 등 7명, 조선어연구회에서 안영섭 등 2명, 불교청년회에서 김해진 1명, 자주여성동맹에서 우봉운 등 2명, 민주학생총연맹에서 봉시현 등 2명, 반팟쇼[공동투쟁]위원회에서 정운선 등 6명, 건민회에서 리극로 교수 등 5명, 독립운동자연맹에서 정이현 등 5명, 학병거부자동맹에서 박경실 등 2명, 민족해방청년동맹에서 ___ 등 3명, 청년애국회[?]에서 리정봉 등 2명, 신문기자단에서 정진석 1명, 건국청년회에서 리강무 등 12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파 정당과 사회단체.
사회민주당에서 여운홍을 위시한 10명, [남조선]천도교청우당에서 김병재 등 6명, 근로대중당에서 김성모 등 9명, 한국독립당에서 김구 등 8명, 조선농민당에서 김채민 등 4명, 민주독립당에서 홍명희 등 13명, 민족자주연맹에서 김규식 등 16명, 천도교학생회에서 김극수 등 2명, 혁신복음당에서 안기승 1명, 삼일동지회에서 조용옥 등 2명, 민족대동회에서 김석규 등 5명, 민중구락부에서 리병욱 1명, 민중동맹에서 라승규 등 8명,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김시건 1명, 삼균주의청년동맹에서 조신방 등 10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조선 대표로 좌파 218명, 중도파 81명, 우파 96명이 연석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pdf 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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