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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의 북조선 체류에 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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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의 북조선 체류에 대한 보고
· 키워드안나 루이스 스트롱, 북한, 방문
· 대표주제어안나 루이스 스트롱
· 설명문안나 루이스 스트롱의 북한 체재 및 활동 경과 보고
· 발신자제25군 사령관 코로트코프,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국 대표 서리 이그나티예프
· 수신자말리크, 비류조프, 시티코프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산출물명: ЦАМО,ф.142,оп.432241c,д.3,лл.71-75.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연방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Анна Луиз Стронг
면수: 5
발신일: 1947.08.22.
수신일: 1947.08.25.

번역문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의 북조선 체류에 대한 보고〉
극동전선 제25군 군사회의
1947년 8월 22일
No.016.

외무성 부상
말리크(Малик) 동지 수신

연해주군관구 사령관
상장 비류조프(Бирюзов) 동지 수신

연해주군관구 정치 담당 부사령관
상장 시티코프 동지 수신

미국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Anna Louise Strong)의 북조선 체류에 대해 보고합니다.
스트롱은 1947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북조선에 체류하였습니다. 스트롱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중국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진실을 알고, 북조선의 공산화, 만주에서 조선군대의 중국민주군대 원조,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대규모 난민 유입 등과 같은 외국 출판물들에 게재된 소식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북조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스트롱은 처음에는 그녀에게 전달되는 개별적인 사실들을 극단적으로 의심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예를 들어 토지개혁의 진실과 그 결과를 알고자 하는 희망에서 그녀는 농촌에서 통역원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자기를 수행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농민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을 꺼리도록 압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스트롱이 북조선에 체류할 당시에 조선인 활동가들과의 인터뷰를 조직하고, 대상을 직접 참관하고, 스트롱에게 생겨난 명확하지 않은 문제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국장 허정숙과 소련군사령부의 손킨(Сонкин) 소좌가 그녀와 같이 있었습니다.
스트롱에게는 북조선에서의 민주건설을 보다 완벽하게 접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제공되었습니다. 그녀는 농업국장, 노동국장, 보건국장, 외무국장 등의 국장들, 농민동맹 및 여성동맹 위원장들, 직업동맹 통합중앙위원회 위원장들, 작가동맹원들, 중앙선거위원회 및 난민원호위원회(комитет по делам беженцев) 위원장들 등과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또한 스트롱은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인민회의 비서이자 프로테스탄드 교회 활동가인 강량욱과도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스트롱은 활동가들 각자의 이력에 세심한 관심을 표명하였으며, 과거에 그들 대다수가 감옥에 갇혀 있었고, 반일활동으로 인해 탄압을 받았으며, 인민들의 진정한 대표자들이라는 사실에 [판독불가] 놀라움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녀는 일본이 항복한 직후에 북조선에서 인민정권이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소련군이 진주한 이후 소련군이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 중앙정권기관이 어떻게 소집되는지, 인민위원회 선거에 어떠한 시스템이 존재했는지, 북조선에서 어떠한 민주개혁이 진행되었는지 등등의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였습니다.
스트롱은 조선의 서점에서 러시아어로 된 소책자 『토지개혁(Земельная реформа)』, 『북조선 – 민주주의 도정으로(Северная Корея – на демократическом пути)』, 그리고 북조선에서의 2년간의 민주건설 성과에 대한 논문집 등 3권의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그녀에게는 공업, 운수, 농업의 재건 및 발전, 인민교육, 보건의 발전 등등의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보여주는 조사 자료와 비교 데이터가 제공되었습니다. 이 자료들은 그녀가 나라의 정치적 및 경제적 면모를 신속하게 파악하고 북조선에서 시행된 민주개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스트롱은 인터뷰와 조사 자료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들을 현장 방문 및 기업소 지배인들, 직업동맹 일꾼들, 노동자들, 농민들, 지식인들, 일정한 계급의 대표자들과의 사적인 대담을 통해 검증하였습니다.
스트롱은 평양에 조직된 북조선에서의 2년 동안의 민주건설 성과를 보여주는 박람회를 방문하였으며, 박람회에 출품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산업의 재건 및 발전 분야 성과를 보여주는 것들을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그녀는 공지호(Кондзихо) 제철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공장의 역사 뿐 아니라, 공장 가동을 위해 소련이 제공하는 도움으로 일본인들이 파괴한 평로(平爐), 용광로, 해탄로(骸炭爐) 등을 복구하기 위한 건설 과정, 기업소들의 노동자들과 근로자들의 생활 및 노동환경 등에 관심을 표명하였습니다. 스트롱은 공장 종업원들의 노동환경과 노동자들 및 근로자들이 누리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권리에 만족을 표하였습니다.
스트롱은 평양에 체류하던 중에 사흘 동안 원산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일본해 연안과 석왕사(Санвонсон) 요양지에 위치한 노동자들 및 근로자들을 위한 휴양소들의 복무상황을 시찰하였습니다.
그녀는 휴양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북조선의 여러 생산기업소 및 운수 분야에서 복무하는 남녀 노동자들과 몇 차례 인터뷰를 하였으며, 근로자들의 복무 상황 뿐 아니라 인민정권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요양 복지 현황에 대해서도 매혹되었습니다.
스트롱은 평안남도와 강원도의 몇몇 시골마을을 방문하였고, 인민위원회 위원장들 및 개별 농민들과 대담을 가졌으며, 토지개혁 이후에 농민들의 생활에 나타난 엄청난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그녀는 옛 가옥과 토지개혁 이후에 건축된 새 가옥을 촬영하였고, 옛 토지 비소유 농민들의 복리 증진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평양에서 스트롱은 조선 해방 2주년을 기념하여 새로 건설된 교예극장에서 개최된 경축회의에 참석하였고, 조선 민족예술의 성과를 과시한 콘서트를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스트롱은 8월 15일 인민위원회가 마련한 연회와 8월 16일 시위에도 참석하였으며, 대중의 높은 정치적 적극성, 시위의 선명성과 웅장함에 매료되었습니다.
스트롱은 2주일 동안의 북조선 방문에서 몇 차례 연설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원산에서는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회견에서 그녀는 해방 구역들에서의 중국 인민들의 영웅적 투쟁에 공감을 표시하고, 반인민적 국민당 정권을 지원하는 미국 반동들의 행위를 비난하였습니다. 그 후 8월 15일에 조선 해방 2주년을 맞아 인민위원회가 주최한 평양에서의 연회와 8월 17일에 있었던 신문 및 잡지 편집인들, 작가들 및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그녀는 북조선 체류에 대한 자기의 인상을 밝혔습니다.
후에 스트롱은 이 인상을 작가연맹(Ассоциация писателей)의 [판독불가] 씨와 친구들에게 간략하게 기록하여 보냈습니다.
스트롱은 2주일 동안 체류하면서 많은 양의 사실 자료를 수집하였고, 북조선의 민주건설 성과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가진 채 보로실로프로 떠났습니다. 스트롱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반동언론들이 새로운 민주주의적 북조선의 삶에 대한 진실을 [판독불가] 비방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스트롱은 김일성 위원장에게 보내는 특별한 감사서한을 [판독불가] 작성하였습니다.
스트롱이 작성한 서한의 번역본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제25군 사령관
근위중장 코로트코프(Коротков) [서명]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국장 서리
대좌 이그나티예프(Игнатыев) [서명]

1947년 8월 21일

조서
1947년 8월 25일. 아래 서명한 우리 카뮈슈티(Камыштый), 그라체프(Грачев), 피코프(Пиков)는 이 문서를 접수함에 있어 스트롱이 작성한 서한의 번역본이 첨부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조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카뮈슈티 [서명]
그라체프 [서명]
피코프 [서명] 조서는 필사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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