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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22일 크라스케비치가 쉬킨에게 보내는 북조선의 정치경제상황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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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사업]한국학분야 토대연구지원사업
러시아문서보관소 소장 해방후 한국사회 관련 자료의 수집 번역 및 주해 (1945~1950)
서지사항
· 표제어1945년 9월 22일 크라스케비치가 쉬킨에게 보내는 북조선의 정치경제상황 보고서
· 키워드북조선, 정치경제, 상황
· 대표주제어정치경제상황
· 설명문북한 정치경제상황 보고
· 발신자크라스케비치
· 수신자쉬킨
· 자료문의동국대학교팀(연구책임자:박명호 교수)

문서 해제



산출물명: ЦАМО,ф.32,оп.11306,д.692,лл.49-52.
자료구분: 타이핑
저작권자: 러시아연방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
원자료언어: политико-экономическое положение
면수: 7
발신일: 1945.09.22.
수신일: 1945.09.24.

번역문


〈1945년 9월 22일 크라스케비치가 쉬킨에게 보내는 북조선의 정치경제상황 보고서〉
바실롑스키(Василевский) 그룹
1945년 9월 22일

모스크바, 노농적군 총정치지도부
쉬킨(Шикин) 동지 수신

조선의 소련군 주둔 구역 정치경제상황의 특징을 귀하에게 간략하게 보고합니다(제1극동전선, 9월 17일).

1. 일반 정보
소련군이 주둔한 영역은 약 13만㎢이다. 이는 조선 전체 면적의 약 59%이다. 이 구역은 다음의 도를 포함하고 있다. 함경북도(20,347㎢), 함경남도(31,978㎢), 평안북도(28,441㎢), 평안남도(14,339㎢), 황해도(16,714㎢), 강원도 면적의 절반(약 1,300㎢)과 경기도 면적의 1/5(약 2,500㎢). 이 구역에 약 1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민족적 구성으로 보면 주민들은 하나의 민족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인 9백만 명(97%) 이상, 일본인 및 중국인 약 2.8%. 인구밀도는 동일하지 않다.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등의 북쪽 지역은 인구밀도가 1㎢당 52.2명을 넘지 않지만, 평안남도의 경우에는 1㎢당 102.9명이다.

2. 농업의 특징
조선의 소련군 주둔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 중 80% 가량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쌀, 콩, 밀, 보리, 수수, 옥수수 등을 생산한다. 평안남도에서는 뽕나무와 품질이 낮은 면화가 재배되고 있다. 조선의 농업은 모든 도에 전형적인 다음과 같은 통계를 통해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
경지 분포(단위 – 헥타르).
평안남도 쌀 – 82,714, 밀 및 보리 – 93,301, 여타 알곡 – 144,538, 콩 – 74,278, 면화 – 23,187, 여타 특용작물 – 2,318, 감자 – 11,157.
총수확량(단위 – 톤).
함경남도(지난 5년 동안의 평균). 쌀 – 124,946, 밀 및 보리 – 16,537, 여타 알곡 – 57,130, 콩 – 21,318.
대규모 토지 소유(단위 – 헥타르)
함경남도. 대토지소유자 – 184,644, 소작농 – 63,500, 부분적 소작농 – 자기 토지 91,126, 소작 72,659.
평안남도. 324명의 지주가 310,000헥타르를 보유하고 있다. 9,500호의 농민 가구가 23,000헥타르를 보유하고 있다. 1,520명의 일본인 가구가 75,282헥타르를 보유하고 있다. 지주들 다수가 10,000헥타르까지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축산업
평안도. 대지주와 소지주 총 316,167명이 말 2,000마리, 뿔 달린 큰 가축 145,000마리, 양 – 2,500마리, 돼지 – 72,000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3. 공업.
조선의 일련이 지역이 강력한 철강, 화학 및 기계제작 기지로 전변되었다. 황해도 서쪽 지역에 조선의 주요 공업기지가 위치해 있다(제철산업의 중심지). 이곳에는 1년에 강철 200,000톤까지를 정련하는 “니뽄 세이테츠(日本製鐵)”(겸이포)가 위치해 있다. 또한 이곳에는 납, 구리, 텅스텐, 아연 및 다른 유색금속을 채광하는 많은 수의 광산이 집중되어 있다.
평안남도에는 매년 석탄 2,700,000톤을 채탄하는 탄광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조선 흑색금속 수요를 충족시켜주는 코크스 공장들이 집중되어 있다. 평양(평성)시과 평안남도 전역은 조선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공업중심지이다. 그곳에는 철강공장, 대규모 화학공장, 유제품콤비나트, 2개 비행기공장, 대규모 병기창, 해군을 위한 고형탄 제조공장과 많은 수의 다양한 소규모 기업소들이 모여 있다. 도시와 도의 공업에 54,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 도의 도시인 개천, 진남포, 순천 등에는 “미쓰비시” 제철공장, 비금속 제조공장, 제철콤비나트, 가성소다 제조공장 등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의 북동부지역에는 두 번째의 대규모 제철 및 기계제작 기지가 위치해 있다. 주요 중심지로는 다음의 도시가 있다. 1) 청진 – 대규모 제철콤비나트 “Нит 394” 제철용량 연간 350,000톤. 2) 성진 – 특수강 생산 중심지. 니뽄 세이테츠 공장은 연간 90,000톤의 특수강을 제련한다. 또한 이곳에는 제철콤비나트, 기계제작 및 자동차공장 등이 위치하고 있다.
함흥 시 지역은 조선 화학공업의 중심지이다. 화학공업에는 50,000명 정도가 종사하고 있다. 지역 전체에 19개의 대규모 화학기업소가 위치하고 있다.

4. 행정체계
전술한 도들은 일본인 총독이 통치하였다. 그의 거처는 서울이었다. 각도의 도지사는 일본인 총독에게 소속되어 있었고, 그들 역시 일본인이었다. 도지사가 도의 행정기능을 수행하였다. 도는 군으로, 군은 면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각 도청의 관료들 대다수는 일본인이었으며, 지도적 직책에는 일본인만이 기용되었다. 검찰, 법원 및 경찰 역시 일본인들 수중에 있었으며, 단지 극히 소수의 자리만이 지극히 신뢰할 수 있는 조선인들에게 부여되었다.

5. 현재의 내부정치상황
조선인 주민, 그중에서도 특히 농민과 노동자 대부분은 소련군의 조선 진입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였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해방자인 붉은 군대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선인들 중에는 기회주의적인 입장을 취한 경우가 적지 않다. 다양한 사회계층은 자기들의 경제적 및 법적 상황의 신속한 변경을 기대하고 있다. 요컨대 노동자들은 일본인들의 자금으로 생활환경이 개선되리라고 예견하면서 일본인 근로자들의 기존 임금 수준까지, 즉 월 평균 200~250엔까지 자기들의 임금을 인상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농민들은 일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분배해주고 세금을 인하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상인들은 아무런 제한도 없는 자유로운 교역이 허용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으며, 기업소 소유자들은 사회주의제도의 도입과 사적인 기업활동의 금지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지식인들 역시 자기들의 경제상황이 개선되리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그룹들은 조선의 국가적 독립을 향한 단일의 목표로 단합되어 있다. 이와 함께 붉은 군대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에 적대적인 자들도 있다.
평양시에 소련군이 진주한 초기에 그곳에서 “민족사회당”이 선포되었다. 지역 공산주의자들은 평성 시에서 발생한 공산당 시위원회 비서의 살해가 이 조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조직은 해산되었다.
제1극동전선 정치지도국의 1945년 9월 16일자 보고서에 따르면, 해주에서 조선인 친일분자들의 지역 공산당위원회에 대한 무장습격이 있었다. 5명이 사망했는데, 공산당 부위원장, 도 콤소몰 지도자, 위원회 인민경제국 부국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붉은 군대의 조선 진주는 조선 주민들의 정치적 적극성을 고양시켰다. 일제 치하에서는 조선에 합법적 기구로서의 공산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별적인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지하에서 은거해 있었으며, 생산기업소들에서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요구를 끌어내지 못하였고, 단지 경제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만 한정되었다.
현재 개별적 조선인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크지 않은 그룹들이 통합되고는 있지만, 개별적인 조직들은 아직도 서로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평성, 함흥, 해주 등지에 조선공산당 도위원회들이 조직되었다. 또한 군, 면, 그리고 기업소들에 하급조직들이 조직되고 있다. 이러한 조직은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다. 요컨대, 평안남도의 경우 모두 약 300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있고, 황해도의 경우에는 단 90명이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서울에 위치하면서, 개별적 조직들을 완전한 단일체로 통합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앙위원회는 자기의 대표자를 해주에 파견하였으며, 대표자는 그곳에서 지역 도위원회 비서로 복무하고 있다. 중앙위원회의 대표들이 다른 도시들로도 파견되고 있다. 개별적 지역당위원회들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내걸었다. 1) 인민공화국의 수립, 18세 이상의 남성과 여성에게 투표권 부여, 2) 과거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은행, 공장, 광산, 철도의 국유화, 3) 일본인들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분배, 4) 기업소들에서의 8시간 노동제, 5) 아동 의무교육과 문맹 퇴치. 이 구호들은 근로대중들 사이에 확산되기 시작하고 있다. 해주시 당조직은 지역자치기구 [판독불가] 민족주의적 성향 [판독불가] 압력을 가하기 위해 정치적 시위를 조직하였다. 공산주의자들에 찬동하여 20,000명이 참여하였다. 지역자치기구지도부는 사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자치지도부가 선출되었는데, 그 구성원 20명 가운데 15명이 공산주의자였다.
전역에서 콤소몰 조직의 설립이 시작되고 있다. 기업소들에 직업동맹이 조직되고 있지만 많은 직업동맹조직 지도자들이 직업동맹의 과업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해주의 제철공장에서 직업동맹이 기업소를 직접 경영하고 있지만, 그들은 정상적인 사업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전역에서 지역자치기구가 조직되고 있다. 그것들 중 대다수는 친일분자들에 의해 오염되었으며, 그들에게 제기되는 요구들을 수행할 능력도, 해당 지역 조선인 주민들의 정상적인 삶을 조직할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크라스케비치(Краскевич)

1945년 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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