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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채성윤” 에 대한 검색결과 21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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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8)

사전(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659(효종 10)∼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중미(仲美). 호는 구봉(九峰). 충연(忠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후(振後)이고, 아버지는 현감 시상(時祥)이며, 어머니는 김흥익(金興...
    이칭별칭 중미(仲美)| 구봉(九峰)
  • 이수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며, 어머니는 ()의 딸이다. [내용]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756년에 지평에 올랐다. 이듬해 장령이 된 뒤 14년 동안 장령과 헌납을 번갈아가며 역임하였다. 1762년 삼남지방에...
    이칭별칭 자준(子俊)| 구호(龜湖)
  • 김시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李麟佐)의 반란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자 ()의 천거로 영남의 요충을 방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뽑혀 울산부사가 되었다. 그곳에 부임하여 폐습을 과감히 개선하는 등 선정을 베풀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숙종실록(肅宗實錄)』 ...
    이칭별칭 휴백(休伯)| 백남(白南)
  • 희암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히 많은 양이 실려 있어 저자가 작시(作詩)에 능했음을 보여준다. 「풍악록(楓岳錄)」은 형 ()과 함께 1723년(경종 3) 3월 13일부터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지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적성록(赤城錄)」은 1725년 무주수령으로 부임할 때 왕을 알현하고...

고서·고문서(14)

  • , 自上宜有敦諭勉出之道矣。 上曰, 司馬昭之心, 路人所知, 彼輩之疏, 專出乖亂, 得其惡言, 不足怒, 且予旣施島配之典, 則大臣何如是過嫌乎? 使入侍承旨, 敦諭于領府事, 使之同爲入侍, 可也。 入侍承旨, 承命趨出。 左承旨趙最壽入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 自上宜有敦諭勉出之道矣。 上曰, 司馬昭之心, 路人所知, 彼輩之疏, 專出乖亂, 得其惡言, 不足怒, 且予旣施島配之典, 則大臣何如是過嫌乎? 使入侍承旨, 敦諭于領府事, 使之同爲入侍, 可也。 入侍承旨, 承命趨出。 左承旨趙最壽入侍。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일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0428 B010428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年 9月 24日_040 ○二十四日午時, 上御熙政堂。 江華留守宋成明, 留待引見入侍時, 右副承旨, 假注書李裕身, 記事官李光溥, 記事官李聖起。 上曰, 居留之任不輕, 江都城池之險, 昔自祖宗朝, 爲保障重地,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9590 B009590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年 9月 24日_040 ○二十四日午時, 上御熙政堂。 江華留守宋成明, 留待引見入侍時, 右副承旨, 假注書李裕身, 記事官李光溥, 記事官李聖起。 上曰, 居留之任不輕, 江都城池之險, 昔自祖宗朝, 爲保障重地, 以...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新, 或於試射賞給之際, 則陳舊兵器, 出用無妨矣。 出擧條 成明俯伏退出。 上曰, 承旨進來。 承旨進伏。 上曰, 頃者都承旨李廷濟, 以儀節間事, 有所陳達矣。 凡入侍之時 ...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3)

  • / [종교·철학/유학]

    1659년(효종 10)∼1733년(영조 9).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채충연, 조부는 채진후이다. 부친 채시상과 모친 김흥익의 딸 사이에서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채명윤과 동생 채팽윤이 있다. 1684년(숙종 1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형 채명

  • 채응만 / 蔡膺萬 [종교·철학/유학]

    1677년(숙종 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채진후, 조부는 채시상, 부친은 이다. 처부는 이현기, 동생은 채응일이다. 1717년(숙종 43) 식년시에 진사 2등 15위로 합격하였으며, 1723년(경종 3) 증광시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하였다. 지평

  • 김시빈 / 金始鑌 [종교·철학/유학]

    오히려 화근이 되어 명천군수로 좌천 되었다. 1728년 이인좌의 반란이 영남지방으로 확대되자 의 천거로 영남의 요충을 방비하는 데 적합한 인물로 뽑혀 울산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