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천 / 高在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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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5-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이다. 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 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학 중 10여 명의 동문들과 함께 건아단(健兒團)을 조직하여 농민대중을 계발하고 민족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한 항일운동을 결의하였다. 독립운동의 기초는 농촌사회의 계발에 달려 있다고 판단하여 수원 인근 안룡면(安龍面) 고견리(古牽里)에 농민야학을 개설하여 계몽의식을 전파하고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7년 강원도 등지에서 일본인에 의해 경영되는 대규모 농장을 목격한 후, 조선 농민들을 착취하는 식민성 농장의 행태에 분개하며 민족농장을 건설하기로 다짐하였다. 1928년 조선인에 의해 조선의 농촌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며 일본에 설립된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에 가입하였다. 1928년 건아단 단원이었던 한전종(韓典鍾)이 학교로부터 무기정학을 당하자, 조직의 명칭을 계림농흥사(鷄林農興社)로 개칭하여 활동하였다. 그 후 단원 김성원(金聲遠) 또한 건아단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본 경찰에 검거되자 다시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로 개칭하고 조직을 개편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18개월 동안 미결수 신분으로 고문을 당하였으며, 1930년 경성지방법원에서 면소 판결이 내려져 풀려났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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