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덕 / 高仁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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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87-1926. 독립운동가. 밀양 출신.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농업에 종사하다가, 1918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길림(吉林)과 상해(上海)를 전전하면서 독립투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1919년 11월 10일 김원봉(金元鳳)·이종암(李鍾巖)·이성우(李成宇)·윤소룡(尹小龍)·배동선(裵東宣) 등 신흥무관학교출신들과 함께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황상규(黃尙奎)를 중심으로 직접 행동대가 조직되자, 내 한몸을 바쳐 나라가 독립된다면 기꺼이 그 밑거름이 되겠다는 각오로, 1920년 3월 상해에서 구입한 폭탄을 휴대하고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서 최경학(崔敬鶴)과 접촉, 거사계획을 세웠다. 1920년 12월 27일 최경학이 밀양경찰서에 폭탄 2개를 던져 건물을 크게 파괴시켰다. 그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잡혀 3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중 1년6개월 만에 가출옥, 석방되었다. 옥고를 겪었지만 독립투쟁에의 의지는 더욱 굳어져갔다. 그러던 중 1925년 7월 11일 이종암이 국내에 잠입하였고, 그해 11월 이종암·배중세(裵重世)·한봉인(韓鳳仁) 등 여러 동지와 거사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이종암이 잡힘에 따라 경북의열단사건(慶北義烈團事件)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에서 공판이 시작되고, 일본의 고문이 심하자 몇 번이나 자결을 기도하였으며, 끝내는 옥사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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