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희 / 姜濟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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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1-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창성 출신.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잡힌 일이 있으며, 그뒤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이동녕(李東寧)·안창호(安昌浩) 등과 연결되어 연통제(聯通制)의 국내책임을 맡아 국내외를 행정적으로 연결하는 업무를 위임받았다. 1920년 1월에 창성군의 군감(郡監)이 되어 강창을(姜昌乙)·선우황(鮮于晃)·강제은(康濟殷)·강이달(姜利達)·강용철(姜容澈)·김홍빈(金洪斌) 등 수십명을 창성군의 연통제 조직원으로 포섭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총장 등과 협의하고 중요한 임무를 전달받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재정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창성군일대를 순회하면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이 군자금을 연통제 조직을 통해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앞으로 송달하였으며, 임시정부의 활동상황을 창성군민에게 알려 민심을 안정시켰다. 또한, 1920년 2월 이후에는 국내조사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 獨立新聞》이나 《한일관계사 韓日關係史》 등 홍보자료 수십권을 인수하여 국내에 배포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년 6개월 만에 가출옥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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