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백 / 姜祥伯

검색결과 / 전체   이전화면

· 이칭별칭

수산 / 水山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종교인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8-1941.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인·항일운동가. 호는 수산(水山)이다. 본관은 미상이며, 제주도 서귀포시(西歸浦市) 대포동(大浦洞)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는 우포(愚浦) 김종훈(金鐘勳)에게 이호진 등과 함께 한문을 익혔으며, 안덕면(安德面) 창천리(倉川里) 출신으로 양씨(梁氏) 성을 가진 훈장에게서 7년을 더 배웠다. 1916년에는 보천교(普天敎)에 입단하여 교리를 익히면서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을 키웠다. 1918년 서귀포시 법정사(法井寺)에서 보천교 신자들이 항일운동을 일으켰을 때 강상백 역시 동참하였다. 이때 같이 항일운동을 하던 동지들이 붙잡혀가자 그는 전라북도 정읍으로 건너가서 민족종교와 한학 공부에 몰두하였다. 그는 1929년에 제주도로 돌아와 북제주(北濟州) 한림읍(翰林邑)에서 수산교(水山敎)를 창설하였다. 1930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穡達洞) 감수동(옛 가물개)에서 한문 서당을 열고 민족계몽운동에 힘을 기울이던 중, 1936년 조선총독부의 유사종교(類似宗敎) 해산명령에 따라 보천교도 강제로 해체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전라북도 정읍(井邑)으로 올라가 수도(修道) 생활에 전념하면서 증산(甑山) 사상에 침잠하였다. 1941년 3월 일본은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인사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사상범예방구금령’을 공포하였을 때, 그는 1941년 1월 17일 4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기 때문에 구속 수감되지는 않았다. 현재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수산강상백선생추모비(水山姜祥伯先生追慕碑)’는, 1988년 3월 그의 문하생들인 ‘수산문인회(水山文人會)’가 스승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 관련자료 (2건)

· 관련주제어 (1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