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안 / 姜斗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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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22-1944.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통영 출신. 1939년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여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발족시켰는데, 그 운동방침으로는 비밀 엄수, 매주 토요일에 회합하여 작품을 감상, 비판할 것 등이었다. 전후 9회의 회합을 통하여 민족문화 존중과 반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1년에는 문예부의 기관잡지인 《학생》을 발간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정신 선양에 힘썼다. 한편, 긴박한 국제정세를 통하여 한국의 독립이 목전에 다가왔음을 느끼고 그때를 맞이하여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실력배양을 목적으로, 임굉(林宏)·이무수(李茂洙)·이태길 등과 함께 1941년에 연구회를 조직하고 문예부의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뒤 자신의 하숙집에서 수차례 비밀회합을 갖고, 사범학교를 졸업하여 교사가 된 뒤에 우수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수재교육을 실시하여 장차 독립될 때에 지도적 인물로 양성하는 장기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졸업 후, 경상남도 창녕 대합국민학교(大合國民學校) 교사로 부임하여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민족의식 앙양 및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중, 1941년 여름에 대구사범학교의 비밀 대중교양지인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발각됨으로써, 그해 7월에 체포되었다.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이,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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