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홍 / 姜大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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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4-미상.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김해(金海)이다. 1925년 1월 경남청년연맹 준비위원을 맡았으며, 같은 해 6월 진영소작인회 창립대회 실행위원을 지냈다. 1926년 10월 동아일보 부산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김단야(金丹冶)·박헌영(朴憲永)·임원근(林元根) 등이 결성한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에 입단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경상남도 책임자와 조선공산당 경상남도 위원을 맡았다. 1927년 12월에는 부산청년동맹 서무부 위원과 신간회(新幹會) 부산지부 간사로 선출되었다. 1928년 ‘제3차 조선공산당 검거 사건’ 때 체포되었다. 1930년 6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32년 1월 만기 출감한 후 동아일보 부산지국장을 지냈다. 1945년 8·15 광복 당일 부산에서 약 1,000명이 모여 치른 부산치안대 결성식에 참석하여 치안대장으로 선임되어 사회질서 안정 등에 힘쓰던 중, 같은 해 8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남도지부 총무부장이 되었다. 9월에는 치안대를 확대하여 치안사령부로 만든 후 총사령관직을 맡았다. 10월에는 부산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11월에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경상남도 대표자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조선의 완전독립·미군정과의 관계·기타 당면 문제 등을 심의하였다. 1946년 1월 좌익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산지부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후 남조선노동당 부산시위원장을 지냈다. 1949년 11월 보도연맹 경상남도연맹 사무국장을 지내며 부산형무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죄수들에게 사상전향을 내용으로 하는 강연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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