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관순 / 康寬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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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강철 / 康哲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9-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필명은 강철(康哲)이다. 본적은 제주도 구좌읍(舊左邑)이다.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濟州公立農業學校)를 졸업한 뒤, 영명의숙(永明義塾) 야학에 재직하면서 계몽극을 만들어 공연하는 등 학생들에게 계몽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아일보 기자가 된 후로 ‘강철’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 애국계몽·항일의식이 담긴 글들을 기고하였다. 1930년 문도배(文道培)·김시곤(金時坤)·김성오(金聲五)·신재홍(申才弘)·오문규(吳文奎) 등과 함께 결성한 항일단체이자 사회주의 운동집단인 혁우동맹(革友同盟)의 청년부에서 활동하면서 청년단원 포섭에 힘썼다. 그러나 일제의 압력을 받아 활동에 큰 제약을 받게 되자 신재홍의 권유로 1931년 6월 사회주의운동의 산하기관인 제주도야체이카의 일원이 되었다. 제주도야체이카에서도 구좌읍을 중심으로 한 해녀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당시 해녀어업조합은 일제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으며, 해산물 매수가격과 관련된 비리와 부정이 잇달아 적발되자,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일본 경찰에 의해 해녀 3명이 구속되고, 시위 배후조직으로 지목된 100여 명의 사회주의운동가들이 체포되면서 함께 체포되어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였고,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출감 후 만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극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청진에서 사망하였다. 옥중에서 작사한 〈해녀의 노래〉는 항일운동가로 널리 불려 졌으며, 해녀들에 의해 전파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2005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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