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 李秉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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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교육/교육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1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의사(醫師). 본적은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순안면(順安面)이고, 출신지는 중국 남경(南京)이다. 1932년 4월 서울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를 중퇴하고,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산하의 인성학교(仁成學校)에서 독립운동가 자제와 교민들을 교육하며 독립사상에 힘썼다. 1933년 7월 당시 대한민국 임시 정부 경무국장 백범(白凡) 김구(金九)의 특별추천으로 중국 광동(廣東)에 소재한 국립중산대학(國立中山大學) 의과에 입학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소집에 응하여 남경(南京)으로 가서 세계적십자사(世界赤十字社) 한국대표로 종군하였으며, 중국 국민당(國民黨)에 입당하여 항일공작을 하였다. 1939년 중국정부군 전시동원에 따라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 있는 제157 및 제144 육군병원에서 의무관으로 2년간 근무하는 한편 한·중연합군 부상 장병 치료 사업에 힘쓰면서 계속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연대를 가지고 활동하였다. 1943년 7월 국립중산대학 의과원에 복학하여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였다. 그 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김구 주석과 이청천(李靑天) 광복군총사령관의 초청으로 중경(重慶)으로 가서 3년간 무한(武漢)요양소에서 근무하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 및 광복군 가족들과 교민의 치료활동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45년 3월 28일 영국군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중 미얀마 군사작전을 위한 공작대원 증파요청을 받고 인도파견공작대(印度派遣工作隊) 요원으로 김승곤(金勝坤)·조지영(趙志英)·김재호(金在浩) 등 8명과 함께 선발되었는데, 중국정부군사위원회에 여권발급을 신청하던 중 미얀마 작전의 종결로 중단되었다. 1945년 11월 3일 조국의 광복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인인 김구·김규식(金奎植)·조소앙(趙素昻)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1990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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