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총파업 / 九月總罷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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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사회/사회구조
· 유형 : 사건/사건 사고와 사회운동
· 시대 : 현대/현 대
1946년 9월 24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약칭 전평)이 전국적 규모로 일으킨 미군정기 최대의 총파업. 9월 총파업이 일어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은 당시의 식량 문제였고, 정치적 배경은 공산당이 미군정과의 우호적 관계에서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신전술’로 전환하였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의 경제적 사정은 매우 심각하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식량부족 문제는 사회를 위기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다. 미군정청의 미곡수집계획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합리한 미곡수집 가격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미곡의 자유 반입을 금지한 조처는 도시의 식량 사정을 극도로 악화시켰다. 그 뿐만 아니라 미군정 관료와 결탁한 모리배들은 쌀값을 마음대로 조작하여 대중의 분노를 야기하였다. 이와 같이 식량문제 등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던 상황은 조선공산당의 행동전술에 매우 유리한 사회적 조건을 형성시켰다.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으로 인해 1946년 9월 6, 7일에 박헌영(朴憲永)·이강국(李康國) 등이 체포당하자, 조선공산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당시의 민심을 이용하여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파업을 계획하였다. 결국 9월 총파업은 대중의 불만을 폭발 직전까지 몰고갔던 참담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조선공산당의 정치적 전략이 결합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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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운동사 - 미군정기의 노동관계와 노동운동:1945∼1948』 / 박영기·김정한 / 지식마당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 안태정 / 현장에서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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