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오 / 崔東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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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지석호 / 池錫浩
최학원 / 崔學源
의산 / 義山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2-미상. 독립운동가. 일명 최학원(崔學源)·지석호(池錫浩). 호는 의산(義山).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그뒤 만주로 망명, 정의부(正義府)에 참가, 김동삼(金東三)·현익철(玄益哲)·김이대(金履大)·김원식(金元植) 등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8년 9월 길림성(吉林省)에서 3부(정의부·신민부·참의부) 통합을 위한 회의가 열렸으나 실패하였고, 이듬해 군정위원회의 성격을 띤 국민부(國民府)가 조직되자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뒤 관할지역의 자치행정은 국민부가, 독립운동사업은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에서, 독립군은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서 전담하도록 기구가 개편될 때 조선혁명당의 국제부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 괴뢰정부가 세워져 조선혁명군과 한중연합군에게 전면적인 공격을 가함에 따라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1932년 11월 마침내 만주를 탈출, 관내(關內)로 이동하였다. 그뒤 북경(北京)·상해(上海) 등지에서 유동열(柳東悅)·현익철·양기탁(梁起鐸)·이광제(李光濟)·김학규(金學奎) 등과 함께 조선혁명당 명의로 정치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935년에는 김원봉(金元鳳)·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을 창당하였다. 1932년 윤봉길(尹奉吉)의 의거 이후 항저우(杭州)로 이동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송병조(宋秉祚)·차이석(車利錫)·조성환(曺成煥)·윤기섭(尹琦燮)·신익희(申翼熙) 등과 함께 국무위원으로 선임되어 1945년 광복까지, 즉 충칭(重慶)에서 귀국할 때까지 국무위원과 임시의정원의원·외무위원 등으로 활약하였다. 6·25 때 납북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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