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국성 / 蔡國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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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1-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재령(載寧)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이다. 독립군들이 일으킨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청산리전투(靑山里戰鬪) 등의 전투에서 극심한 타격을 받은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을 위해서 1920년 4월부터 참변과 간도토벌을 실시하였다. 그러자 중국·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은 일본군을 피해서 러시아 영토인 자유시(自由市: 스보보드니)로 모여들었다. 1920년 10월 한인니항군대와 이르쿠츠크파의 대한국민의회와 극동공화국을 장악한 이동휘(李東輝)의 상해파(上海派) 사이에서 니항군대 편입문제로 갈등이 일어나자, 니항군대와 간도 지역의 독립군부대를 마사노프로 강제 이주시키고, 명령에 응하지 않은 자유대대 장교들을 무장해제 또는 체포하여 지방수비대로 강제로 편입시켰다. 이때 자유대대의 최고려·오하묵 등은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臨時高麗革命軍政議會)를 조직하고 갈란다라시윌린을 총사령관으로, 오하묵을 부사령관으로, 채성룡(蔡成龍)·김하석(金夏錫)을 군정위원으로 삼았다. 1921년 6월 6일 총사령관 갈란다라시윌린은 자유시에 도착하여 고려혁명군정의회 총사령관은 바로 자신임을 선포하고, 박일리아로 하여금 군대를 이끌고 자유시로 출두할 것을 명령하였다. 1921년 6월 27일 총사령관 갈란다라시윌린이 파견한 자유시수비대 제29연대의 공격에 사할린의용대 연대장 그레고리예프는 항복하였으나, 사할린의용대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이때 전사자와 도망간 사람들을 제외한 864명의 의용대원 모두가 러시아 군에 체포되었는데, 이른바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채국성(蔡國成)은 이때 사할린의용대 장교로서 함께 체포되어 이르쿠츠크 감옥에서 혹독한 수감생활을 하다 순국하였다. 2002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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