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준 / 盧泰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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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무웅 / 無雄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11-1970. 독립운동가. 호는 무웅(無雄). 임시정부 군무총장 백린(伯麟)의 차남이다. 1931년 3월 난징(南京)에서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4월에는 중국 중앙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교육 및 훈련을 받았다. 1936년 졸업하여 한국독립당 청년단을 조직, 단장에 취임하였다. 그해 6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으로 쑤이위안성(綏遠省)에 파견되어 지하공작에 참가하였다. 1937년 2월 청년들을 규합하여 난징·한커우(漢口)·창사(長沙)·광둥(廣東)·류저우(柳州)·충칭(重慶) 등지를 돌며 적의 기밀탐지 및 선전공작 등을 전개하였다. 1939년 9월 조성환(曺成煥)을 단장으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사특파단(軍事特派團)의 단원으로 산시성(陜西省) 시안(西安)에 파견되어 광복군총사령부의 시안 진출을 위한 기초공작을 전개하였다. 1941년 3월 광복군 제1지대 간부로 선임되어 지대장 이준식(李俊植) 밑에서 안춘생(安椿生)·노복선(盧福善)·조인제(趙仁濟) 등과 산시성(山西省)일대를 근거지로 효율적인 공작임무를 수행하였다. 1942년 4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의 광복군 편입으로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장에 임명되어 초모훈련·선전공작·정보수집·유격전 전개 등에 전력투구하는 한편, 한미군사훈련, 즉 오에스에스(OSS)특수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을 위해 대기하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제2지대장 대리로 대원을 이끌고 귀국한 뒤, 민족청년단조직부장·국무총리비서실장·태양신문사(太陽新聞社)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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