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현 / 張斗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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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경제·산업/산업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74-1938년. 실업인. 서울 출신. 한말에는 주로 농상공부의 관계에서 관직을 맡아오다가 국권상실 후 실업계에 투신하였다. 조선취인소(朝鮮取引所)이사를 거쳐 1920년에 조진태(趙鎭泰) 등과 함께 민족자본형성을 위하여 천일은행(한국상업은행의 전신)을 설립하였다. 이어 같은해 동양물산주식회사(東洋物産株式會社), 1923년 흥일사(興一社), 1924년 서울고무합자회사를 건립하여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또한, 언론활동의 주역으로 동아일보사·시대일보사·중앙일보사 등의 중역을 맡아 활동하였으며, 중앙보육학원(지금의 중앙대학교 전신)과 보성고등보통학교의 운영에 재정지원을 하는 등 교육 및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경제·문화·언론·예술·교육 등의 다방면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던 중, 1920년 7월에는 70여명의 발기인이 모인 조선체육회 발기대회에서 초대회장에 추대되어 7월 23일부터 1921년 7월 22일까지 조선체육회 회장직을 지냈다. 암울한 시대에 우리 민족의 경제·문화·언론·교육·체육 등의 다방면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특히, 조선체육회의 초대회장으로서 민족의 장래 기둥이 될 청장년들의 체육발전과, 일본인들이 조직한 체육단체에 대항하여 우리 민족의 자립정신 고취를 위하여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위타지학(爲他之學)의 실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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