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률 / 金奉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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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수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晩)·최범술(崔凡述)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종이 3만여 장을 구입하여 해인사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였다. 경상남도 일대에 독립만세운동을 전파하기 위해 학생 대표 30여 명과 분담하여 각 지역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였다. 각 지역에서 활동한 후 최종적으로 통영(統營) 지역에서 집결하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과 경찰들에게 동지들이 검거되어 통영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불발로 그쳤다. 이후 김장윤(金章允)·강재호·박덕윤·손덕주·송복만 등과 함께 만주로 이주하여, 윤기섭(尹琦燮)·지청천(池靑天) 등이 운영하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신흥무관학교 졸업 후 독립군에 편성되었다. 1920년 9월 군자금 확보를 위해 김장윤·박달준(朴達俊)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1921년 1월 문경(聞慶)에 위치한 금룡사(金龍寺)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는데, 주지가 밀고하여 체포되었다. 이후 경성으로 호송되어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96년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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