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만 / 金福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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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907-1974.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현경면(玄慶面)이다. 광주농업고등학교(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6년 11월 3일 국순엽(鞠淳葉)·김광용(金匡溶)·김창주(金昌柱)·김한필(金漢苾)·문승수(文升洙)·박인생(朴仁生)·안종익(安鍾翊)·왕재일(王在一)·임주홍(林周弘)·장재성(張載性)·정남균(鄭南均)·정동수(鄭東秀)·정우채(鄭瑀采)·정종석(鄭鍾錫)·채영석(蔡泳錫)·최규창(崔圭昌) 등과 함께 항일학생결사단체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목표로 하였으며 식민지 노예교육을 반대하고 사회과학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노력하였다. 1927년 회원 중 배신자가 발생하자 기밀 누설 방지를 위한 형식적 모임 해체를 선언하였으나, 주동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8년 6월 광주농업고등학교와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의 동맹 휴학을 계획한 일이 적발되어 퇴학을 당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생하자 일본 경찰이 성진회와 관련된 인물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함께 체포되었다. 1930년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하였으나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아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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