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신 / 金東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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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별칭

원표 / 元表
청암 / 淸菴
· 분야 : 역사/근대사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閔宗植)이 거의(擧義)할 계획을 세우자, 민종식을 찾아가 선봉장으로 전라북도에서 기병할 것을 약속, 의병을 거느리고 무주군 덕유산에 있는 시원암(柴原庵)에 유진하였다. 그러나 민종식이 홍주 입성 뒤 곧 함락당하여 연계가 이루어지지 않자 독자적으로 의진을 구성, 금산·용담·전주 등지를 거치면서 의병을 모은 뒤 지리산일대를 근거지로 활약하며 일대의 의병장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1907년 8월 4일 8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남원 사장(沙場)에서 적과 접전하였으며, 11일 8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구례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하고 군기를 노획하였다. 8월 17일 80명을 거느리고 경상남도 함양군 좌전에서 적 20명과 접전하였으며, 9월 4일 600명을 거느리고 안의군 월성에서 적 40명을 공격하여 큰 타격을 주었다. 10일에는 80명을 거느리고 순창우편취급소와 경무고문분파소를 습격하여 관물을 노획하였다. 이석용(李錫庸)의 의진이 용담 내원사(內源寺)일대에서 활약하자 합진할 것을 꾀하여 15일부터 17일 사이에 합진하였으나, 통수권과 전략 등의 문제로 공격해오는 적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여 곧 해진하였다. 그뒤 충청도·강원도·경기도를 주유한 뒤 민경호(閔競鎬) 휘하의 700명을 얻어 10월 27일에는 보은일대에서, 28일에는 남악동에서 교전하였다. 1908년 2월 용담군 구랑과 무주일대에서 적과 교전하였으며, 3월 6일에 800명을 거느리고 경상남도 거창군 매학일대에서 적 70명과 접전하였다. 그뒤 병을 얻어 고향으로 내려가 치료하던 중 6월 8일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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