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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회 / 崔慶會 [종교·철학/유학]
1532(중종 27)∼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의병장. 충 후손, 혼 증손, 할아버지는 윤범, 아버지는 천부이다. 경장의 형이다. 양응정·기대승에게 수학하였으며,1567년(선조 즉위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영해군수, 경상우병사 등을 역임하였다. 화
최경흠 / 崔景欽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풍요삼선』, 『소대풍요』 등을 저술한 시인. 종래의 여항시사(閭巷詩社)의 전통을 이어 1853년(헌종 1) 유재건·조희룡(趙熙龍)·이경민 등 당시의 저명한 여항시인들과 함께 직하시사(稷下詩社)를 결성해 여항문학의 말기를 장식하였다. 여항시인으로서의 그의 업적
최계 / 崔誡 [종교·철학/유학]
1567(명종 22)∼1622(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종옥이다.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하여 만경현령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때에는 대북파의 전횡이 심하여지자 벼슬을 버리
최고운전 / 崔孤雲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 최치원이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에 의하여 소설의 주인공으로 형상화되었으나, 역사적 사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금돼지의 최치원 어머니 납치, 늙은 할미[老姑]와 용의 아들인 이목과의 만남, 그들의 최치원에 대한 뒷바라지
최관용 / 崔寬用 [역사/근대사]
1899-1946. 독립운동가. 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입하였고, 1920년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 대한독립군 제1대대 제3중대 특무정교(特務正校)로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최광 / 崔廣 [역사/근대사]
1882-191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용덕면(龍德面)이다. 1907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경제학전문과(經濟學專門科)를 졸업하였다. 1908년(융희 2) 영남지방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박정동(朴晶東)·이하영(李夏榮) 등 경
최광벽 / 崔光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8∼1791). 세자시강원 설서가 되어 왕세자를 가르쳤다. 나경언이 왕세자의 비행을 상소하여, 영조가 왕세자를 죽게 한 사건이 일어나자 최광벽은 관직을 떠나 향리로 돌아갔다. 복직되었다가 이후 향리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했다.
최규서 / 崔奎瑞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경창 현손, 집 증손, 할아버지는 진해, 아버지는 석영이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 때 서인의 나문에서 뛰어난 재주로 시명을 얻어 언관이 되었다.대제학, 우의정, 영
최규창 / 崔圭昌 [역사/근대사]
1908-1949.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영암 출신. 1926년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 장재성(張載性)·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왕재일(王在一)·정남균(鄭南均)·박인생(朴仁生)·김광용(金匡溶)·채영석(蔡泳錫)·김한필(金漢苾
최규하 / 崔圭夏 [정치·법제/정치]
1919-2006. 정치가, 외교관, 제10대 대통령. 19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과 졸업. 1945년 서울 사대교수 취임,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 1951년 외무부 통상국장,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주일대표부 공사, 1963년
최균 / 崔均 [종교·철학/유학]
1537-1616. 조선 중기의 의병장. 아버지는 운철이다. 어버이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주역』에 통달하였고, 특히 천문에 밝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생 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스스로를 풍운장이라고 불렀다. 고성·사천 등지에 진격
최금경 / 崔金莖 [역사/근대사]
1908-195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최봉식(崔鳳植)·최량(崔良)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삼동면(三東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가회동(嘉會洞)이다.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도쿄 와세
최금봉 / 崔錦鳳 [역사/근대사]
1896-1983.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 1918년 삼숭소학교(三崇小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대조직과 군자금모금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19년 평안도의 부인들을 규합하여 항일비밀결사인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결
최기남 / 崔起南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1619(광해군 11). 조선 중기의 문신. 명손 증손, 할아버지는 업, 아버지는 수준, 어머니는 남상질의 딸이다. 성혼의 문인이다. 1602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예조·병조의 정랑과 세자시강원시강·영흥대도호부사를 역임
최낙종 / 崔洛鍾 [역사/근대사]
1864-1945. 항일기의 독립운동가·노동운동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성에서 독립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3월 20일 구만면의 국천 모래사장에서 900여명의 농민과 함께 봉기하여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활약하였다. 3.1운동의 주동자로
최남두 / 崔南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0∼1777). 병계 윤봉구를 뵌 후로는 수시로 찾아가 학문을 문의했으며 편지를 통해서도 경서와 상례 등에 관해 문의했다. 57세 때 학행으로 관찰사에게 천거되었다. 권진응·이의조 등과 도의지교를 맺었다. 시문집으로《모려선생문집》이 있다.
최남선 / 崔南善 [교육]
현대의 문화운동가·작가·사학자(1890∼1957).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계몽잡지 《소년》을 창간하고 최초의 신체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었다. 3·1만세운동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였고 민속학 연구 및 한국사 연구·시조부흥운동 등 민족문화운동에 힘썼다.
최남중 / 崔南重 [종교·철학/유학]
1674∼1740(현종 15∼영조 40). 조선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성기, 어머니는 서일회의 딸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최계종의 고손이다. 삼남 중 막내로, 어려서 주자의 백록동규, 회재 이언적의 위육설, 퇴계 이황의 인설을 학문의 요법으로
최능찬 / 崔能贊 [역사/근대사]
1881-193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대동군 금제면 원장 장날인 1919년 3월 4일,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이 주동한 반석면 상사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반석교회와 원장교회가 중심이 되어 계획하던 중, 3월 2일 상사리
최덕지 / 崔德之 [종교·철학/유학]
1384(우왕 10)∼1455(세조 1). 조선 전기의 문신. 용봉의 증손, 할아버지는 을인, 아버지는 담, 어머니는 박인부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한 뒤 추천을 받아 사관이 되었고, 교서관정자, 예문관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72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