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홍석 / 洪錫 [종교·철학/유학]
1604(선조 37)∼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경소, 어머니는 한완의 딸이다. 김상헌의 문인이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굴욕적인 화의로 끝을 맺자 태백산 춘양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김수항·송시열의 추천으로 참봉이 되어 세
홍석기 / 洪錫箕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80(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해 증손, 할아버지는 순각, 아버지는 이중, 어머니는 남충원의 딸이다. 구서봉의 문인이다. 1641년 호조좌랑으로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했고, 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해주목사, 서천군수, 남원목
홍석주 / 洪奭周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2). 1795년(정조 19) 춘당대문과에갑과로 급제하여 사옹원직장을 제수받았다. 1797년 승정원주서, 1802년(순조 2) 정언, 1808년 가선대부에 올라 병조참판, 1834년 이조판서,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를 역임하였다
홍선관시초 / 紅仙館詩鈔 [언론·출판]
저자 교중희(?-?). 필사본. 이 책은 교중희의 시집을 초록한 <몽홍선관시초>, 장보의 <범사도>와 <속범사도>에 실린 장보의 시와 당대 여러 명사들의 제영을 초록한 <범사도제영>과 <범사도제영속>, 오숭량이 자신의 시집에 붙인 제시를 필사하여 1책으로 합철한 것이
홍성 / 洪晟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2∼1778). 1723년(경종 3)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에 보직되었다가 1762년(영조 38) 지평에 올랐다. 1772년에 가자되어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와 글씨에 능하였다.
홍세태 / 洪世泰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유하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무관이었던 익하(翊夏)이며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이다. 홍세태는 5세에 책을 읽을 줄 알고 7, 8세에는 글을 지을 만큼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신분이 중인층이라 제약이 많았다. 시로 이름이 나서 김창협(金昌協)·김창
홍소라선 / 紅素羅扇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붉은 비단으로 만든 부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2방 의궤 도설에는 홍라소원선으로 칭하였다. 붉은 민무늬 비단으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로, 부채 및 자루의 길이는 1장 1자 2촌이고 지름은 3자 3치 5푼이다. 전면의 뒤쪽에
홍소원산 / 紅素圓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우산.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푼이다. 자루 및 호로를 합한 길이는 1장 1자 2촌 9푼이다. 189
홍수보 / 洪秀輔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800.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주문, 조부는 홍만기이다. 부친은 홍중효, 생부는 홍중후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2년(영조 38) 승지로 재직 중 영조의 명을 받아 예문관 현판을 써 붙였다. 그 후 강
홍수산 / 紅繡傘 [정치·법제/법제·행정]
대한제국 시기 황후 의장으로 사용된 기물. 제도는 일산과 같은데, 운문의 홍화화주로 3개의 처마를 만든다. 맨 윗 처마에는 운봉문을, 아래 두 처마에는 서초문을 그린다. 덮개의 길이는 일산에 비해서 짧은 편이며, 유소는 드리우지 않는다. 산의 총 길이는 4자 2치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