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 조선 총 10,287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시대 : 조선
홍문대기 / 紅門大旗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시대 의장기의 하나. 적색 바탕에 청룡과 청ㆍ적ㆍ황ㆍ백색의 네 가지 채색으로 구름무늬를 그렸고 화염각과 기각을 달았으며, 대가 노부ㆍ법가노부 때 맨 앞에 섰다. 기바탕과 화염각 및 영자는 홍주로, 깃은 흑주, 자루는 중죽을 쓴다.
홍백화전 / 紅白花傳 [언론·출판]
저자 미상. 필사본. 책의 구성은 2권 1책으로 상하가 합본되어 있다. <홍백화전>은 비평본으로 본문 가운데 평점을 표기하고 123개가 비평이 본문 중간 중간에 협비 형태로 가해져 있다. 다만, 12면과 103면, 152면에 주쌍행으로 쓰인 것은 비평이 아니라 본문
홍병수 / 洪秉壽 [종교·철학/유학]
1807년(순조 7)~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홍응운, 조부는 홍경안, 부친은 홍학연이다. 외조부는 이의강, 처부는 신순이다. 1847년(헌종 13) 정시에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도청부사과‧양주목사‧이조참의‧예방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품계는 통
홍병찬 / 洪秉纘 [종교·철학/유학]
생물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홍종하, 어머니는 백주진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대사간에 올랐고, 1780년 홍충도관찰사에 파견되었다. 이어 황해도관찰사, 대사간,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1788년(정조 12) 비변사제조를 거쳐 개성부유수로 파
홍봉한 / 洪鳳漢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3∼1778). 사도세자의 장인이다. 백골징포, 환곡작폐엄금 등으로 국고를 늘렸다. 노론의 영수로 죽어가는 사도세자를 방관해 비난 받았으나 영조가 사도세자의 시호를 내리자 돌연 세자를 죽게 한 김구주일파와 벽파의 탄압기회로 삼았다.
홍산자 / 紅散子 [생활/식생활]
연회와 제례에 사용된 찬물로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튀긴 후 꿀과 홍반가루를 묻혀 붉은색을 띄는 산자. 산자는 반죽한 찹쌀가루를 사각형으로 잘라기름에 튀긴 후 꿀을 발라 밥이나 깨를 묻혀 만든 유밀과이다. 백반가루를 묻히면 흰색의 백산자이고 팥물로 지은 밥인 홍반가루를
홍산향교 / 鴻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교원리에 있는 향교. 처음 세워진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문헌 기록상으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홍산현 학교조에 “향교가 현의 북쪽 3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확인된다. 1591년 관찰사 이성
홍살문 / 紅─門 [사회/가족]
능·원·묘·궁전 또는 관아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 태극 문양은 네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삼태극({{#001}}),
홍생원유기 / 洪生遠遊記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산문. 홍생이 죽어 저승에서 놀다가 살아서 돌아온 내용을 기록한 글이다. 작자인 안정복의 문집인 『순암잡서(順菴雜書)』 제41책에 전한다. 「홍생원유기」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단순하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의 체험담을 서술한 것이
홍서봉 / 洪瑞鳳 [종교·철학/유학]
1572(선조 5)∼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계정 증손, 할아버지는 춘경, 아버지는 천민, 어머니는 유당의 딸이다. 15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일찍이 시명을 떨쳐 ≪청구영언≫에 시조 1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