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 : 인물 총 3,881건의 주제어가 있습니다.
유형 : 인물
유허일 / 柳虛一 [종교·철학/원불교]
1882년(고종 19)∼1958년. 원불교의 교무. 1932년에 박중빈 제자가 되었고, 그 이듬해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원불교 중앙총부 학원교무·공익부장·교감·예감·총무부장·순교감·교정원장 등을 역임, 1935년에는 수위단원에 피선되었다. 66세 때 재단법인 원
유현시 / 柳顯時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67∼1752). 45세 때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후진교육에 힘썼는데, 66세에 안동부의 추천으로 안동부내 도훈장이 되었고, 1749년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만년에 《심경》, 《근사록》을 연구하였다. 저서는《호와유고》가
유형석 / 柳瀅錫 [역사/근대사]
1914-1973.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강계 출신. 강계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1932년 안동현립소학교(安東縣立小學校) 및 봉천초등학교(奉天初等學校) 등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항저우(杭州)의 중국항공학교에 입학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
유형원 / 柳馨遠 [종교·철학/유학]
1622-1673. 조선 현종 때의 실학자. 1654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야인으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학문적 관심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 있었다. 실사의 문제와 부편적 인도로서의 천리를 문제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저서에 <반계수록
유호인 / 兪好仁 [종교·철학/유학]
1445(세종 27)∼1494(성종 25). 조선 전기의 문신·문장가. 음의 아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에 생원,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를 거쳐, 1478년 사가독서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유홍기 / 劉鴻基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개화운동가(1831∼?). 개화사상가. 개화운동 지도자. 1869년 한성판윤와 더불어 개화사상의 동지가 되었다. 1870년 초부터 박규수의 사랑방에서·김윤식·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의 양반 자제들에게 개화사상을 교육하였다. 당대의 뛰어난 청년
유화 / 柳和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57년(영조 33). 조선 후기 문신. 증조부는 유희사, 조부는 유영회, 아버지는 유동민이다. 외조부는 소명국이다. 유화 집안은 대대로 사관 벼슬을 지냈다. 1732년(영조 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전적, 예조정랑, 보령현감, 통
유황 / 兪榥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55(효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군수 영 증손, 할아버지는 대의, 아버지는 성증, 어머니는 준의 딸이다. 1633년 상운찰방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지평, 예조정랑, 이조참의, 부승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유효립 / 柳孝立 [종교·철학/유학]
1579(선조 12)∼1628(인조 6). 조선 후기의 모반자. 잠 증손, 할아버지는 자신, 아버지는 희견,어머니는 이현의 딸이다. 희분의 조카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4년 사헌부정언·병조정랑, 이듬 해 필선, 1616년 수찬
유후조 / 柳厚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8∼1876). 고종 때 이조참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주청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그곳 서양인들의 동정을 알렸는데, 병인양요 때 아들 주목에게 의병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1872년에는 판중추부사로 퇴관하였다.
유희경 / 劉希慶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촌은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종7품인 계공랑(啓功郎)유업동(劉業仝)이고 어머니는 허씨(許氏)이다.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
유희량 / 柳希亮 [종교·철학/유학]
1575(선조 8)∼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설서·정언·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정랑·교리·수찬을 역임, 지평·
유희분 / 柳希奮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59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조좌랑이 되고, 1599년 수찬 재임 때 유성룡을 탄핵했다가 민몽룡의 논척으로 파직되었다. 예
유희춘 / 柳希春 [종교·철학/유학]
1513(중종 8)∼1577(선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양수의 증손, 할아버지는 공준, 아버지는 계린, 어머니는 최부의 딸이다. 처부는 송준, 김인후와는 사돈간이다. 김안국·최두산의 문인으로 153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 장령, 전라도관찰사
윤가묵 / 尹家默 [종교·철학/유학]
1806년(순조 6)∼1890년(고종 27). 조선 말기 학자.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와 성리학의 성명도설 연구에 힘썼다. 1855년(철종 6)에는 사도세자를 추존할 것을 건의하는「의리소」를 지어 간우 이인중과 함께 서울로 갔다. 유고로
윤각 / 尹慤 [역사/조선시대사]
1665(현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익상이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비변사낭관·도총부도사·초계군수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의
윤개 / 尹漑 [종교·철학/유학]
1494(성종 25)∼1566(명종 2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구몽, 아버지는 이손, 어머니는 윤백연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저작, 이조좌랑, 형조참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윤계 / 尹堦 [종교·철학/유학]
1622(광해군 14)∼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두수 증손, 할아버지는 휘, 아버지는 면지, 어머니는 경섬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예조좌랑, 황해도도사, 한성판윤, 조참찬, 공조판서, 광주유수 등
윤계 / 尹棨 [종교·철학/유학]
1583(선조 16)∼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우신 증손, 할아버지는 섬, 아버지는 형갑, 어머니는 황치경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
윤계겸 / 尹繼謙 [종교·철학/유학]
1442(세종 24)∼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승례 증손, 할아버지는 번, 아버지는 사흔이다. 1457년(세조 3) 음보로 세자우참군에 처음 제수되고, 그 뒤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의빈부경력,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호조참판, 강원도관찰사,




